2011.05.18 뱀프케빈

from 3 2012. 9. 20. 23:10

주인공은 언제나 그렇듯이 케빈





1.





  온 몸이 뻑적지근했다. 상쾌한 토요일 아침치고는 이상하게. 특히 목쪽이. 괴상하게 따가웠다. 아렸다. 그저 삐끗한 것 같기도 했다. 잠을 잘 못 잤나. 어제 밤을 다시 떠올려 본다.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클럽에 가서, 괜찮은 놈 하나를 물어왔고, 나이를 물어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8살, 아니 9살 차이였나. 20대 초의 예쁜이였다. 목을 자주 물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자주 물었다. 확실히. 기분이 좋았는데. 기절이라도 했던 모양인지 기억이 흐릿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의심해야 했다. 목 한쪽이 피멍으로 씨뻘겋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맞은 것도 아니고. 좀 물렸다고 멍이 이렇게 잡히나? 오늘은 아무데도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야겠다. 쪽팔리게.


  하지만 난 약 1분 후 1분 전의 그 다짐을 깨버릴 수 밖에 없었다.


  오. 주여.


  오. 세상에!


  모자를 뒤집어 쓰고 급하게 집밖으로 나왔다. 오전 11시. 토요일 오전 11시. 충분히 병원이 열려 있을 시간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차에 시동을 걸었다. 빚져서 산 새차가 오늘따라 똥차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차에 달린 거울로 다시 한 번 이를 확인했다. 오, 주여. 오, 하나님 세상에.


  핸들을 꺾을 때마다, 장식으로 달아 놓은 십자가가 흔들렸다. 하나님께 벌을 받은 거야.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야, 섹스만 안했어도. 거울을 힐끔, 다시 확인한다. 또 한 번 OH MY GOD. 목에 든 시뻘건 멍자국 조차 가리지 않은 채였다. 차를 세웠다. 근처에 있던 아무 약국에나 들어가 파스를 샀다. 차로 돌아와 목에 정성스레 파스를 붙였다. 최대한 가려지도록 각도까지 딱 맞춰서. 아. 이제야 좀 안정이 된다.


  십자가를 떼어버릴까. 노려보고 있는 저 모습이 무섭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의사는 내 입속을 들여다보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흔하게 있는 일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건강엔 전혀 지장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말씀은,"
  "네. 갑자기 없던 송곳니가 나는 경우가 상당히 흔하거든요. 생각보다. 위험하지도 않고, 전혀 걱정할 거리가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이에요."


  지극히 정상적. 안심이 돼서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났다. 다행인건지, 아닌건지. 그런데 이 병원에서 원래 이렇게 좋은 향이 났던가. 계산을 하며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것이 아닌가. 조금 이상했지만 신경을 끄기로 했다. 병원에서 나는 좋은 향기보다, 내 자신의 문제가 더 골치 아프니까.


  송곳니도 교정을 할 수 있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흔들리는 십자가를 보며, 생각했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올 걸 그랬다. 이런 나이에 교정기는 좀 흉하긴 해도. 송곳니가 더 흉할지, 교정기가 더 흉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엄지로, 새로 생긴 송곳니의 끝을 꾹꾹 눌러봤다. 어떻게 처음부터 자리잡고 있었다는 듯이 이렇게 태연스럽게 앉아 있는 걸까. 하지만 송곳니는 누른다고 들어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생각보다 굉장히 아팠다. 잇몸과 손가락 모두. 그래서 손가락을 얼른 이에서 떼버렸다.




2.




  멍자국은 꼬박 나흘이 지나고 나서 사라졌다. 그 동안 난 회사에 매일매일 스카프를 두르고 가야했다. 회사 동료인 광희가 그걸 보고 '게이인 거 티내냐'며 놀렸다. 이성애자는 스카프를 하지 말라는 규칙이라도 있냐.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내심 그 말이 며칠 내내 신경이 쓰였으므로, 스카프를 풀고 가는 날, 난 굉장히 기뻤다. 갑갑하기도 했고. 남아 있는 작은 구멍 두개는 밴드로 가렸다.


  하하. 꼭 뱀파이어 같네.


  어쩐지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아서 신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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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을 못 정해서 뒷얘기를 쓰지 못 한다는 건 안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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