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1 (광총)아메리카노

from 3 2012. 9. 20. 23:11

준영 광희 시완 케빈 (이 등장할 뿐...)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 세잔. 시럽은 빼고, 한 잔은 얼음 동동 띄워서 차갑게.


  남자 셋. 아메리카노 셋. 쿠키는 넷.


  카페에 남자들끼리 오기도 하는 구나. 처음엔 단지 그저 그런 호기심뿐이었다. 대학가의 지하 카페에서 일하고 한 달. 난 그들이 이 가게의 단골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매번 아메리카노를 먹는다. 나머지 한 사람은 메뉴를 바꿔가며 먹지만 열에 여덟은 아메리카노. 난 일하기 편해 좋다. 제일 간단하니까. 그들은 오래 앉아 있지도 않는다. 한잔 씩 먹고 나면 미련 없이 일어난다. 자리도 아주 깨끗하다. 다른 여자 단골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쿨함이다.


  "야. 미정이 누나가 너 소개팅 시켜준댔는데 광희 얘가 막 설레발 쳐가지구."
  "아. 걔는 준영이 스타일 아니었다니까 그러네."
  "야. 사람은 만나봐야 아는 거지. 귀엽게 생겼던데."
  "그렇게 좋으면 소개팅 너 하든가."
  "내 타입 아니었어."
  "것 봐."


  무슨 사이일까?


  "준영이는 내가 있으니까 소개팅 필요 없어."


  친구 사이라고 하기엔 미소가 좀 야릇하지?


  "너나 시완이랑 바람피우지 마."


  와하학. 한 명은 가게가 떠나가라 웃었고, 나머지 한 명은 썰렁하게 웃어보였다. 쟤네 진짜 사귀나.







  아메리카노 두 잔. 둘 다 얼음 동동 띄우고 차갑게. 거기에 한 잔은 시럽 듬뿍 넣고 달콤하게.


  사귀는 건지. 바람인지. 단순히 친한 친구인건지.


  "어유, 먹는 것도 어쩜 이렇게 예뻐~"
  "아. 먹는 데 건들지 마."
  "엉아가 케이크 사주까요, 아가?"
  "아가 소리 좀 집어 쳐라."


  내 기억이 맞다면 광희와 시완이었다. 광희가 시완일 얼마나 예뻐하는 지 눈을 시완에게서 떼지를 못했다. 눈은 계속해서 미소. 시완이 시크하게 빨대를 쪽쪽 빨아도 그건 그거대로 귀여운지 손이며 얼굴을 쪼물딱 쪼물딱. 난리다. 시완은 그게 익숙한지 처음엔 짜증을 내다가 곧 얌전해진다. 사귀는 게 이쪽인지. 바람인지. 단순히 친한 친구인건지.


  재미있네.


  "아. 황광희 너 이제 외로워서 어쩌냐?"
  "응? 뭐가?"
  "1학년에 선미라고 있잖아. 걔가 어제 준영이한테 고백했다는데."
  "그래서?"


  맞받아치는 말이 제법 날카로웠다. 역시 연인은 그쪽인가?


  "준영이 여친 생기면 너 외로워서 어쩌냐고. 이 문준영빠야."
  "에이~ 우리 씨완이가 있는데 뭐~"
  

  그리고 걔는 준영이 스타일 아니야. 걱정할 거 없지롱. 광희가 활짝 웃으며 시완의 볼을 꼬집었다.


  "걱정했쪄~ 우리 애기~"
  "아! 걱정은 무슨. 하지 마! 아퍼!"


  그들의 수다는 셋이서 왔을 때 보다 조금 길었다.






  아메리카노 세 잔. 시럽 빼고 차갑게.


  하나는 침울 하고. 둘은 들떠 있다.


  "내일 같이 옷 사러 가자."
  "오키. 난 모자 좀 사야겠다."
  "야아. 진짜 가?"
  "그럼 진짜 가지 가짜 가냐?"


  광희가 입이 댓 발은 나왔다. 으으으음. 무슨 일일까.


  "알바를 빼든가."
  "이거도 대탄데 또 어떻게 빼라고."
  "그럼 오지 마. 다른 여자애들 너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
  "그래. 일하고 쉬어."


  아. 아아아. MT라도 가나. 광희는 점점 울상이다. 둘만 가고 혼자 못 가는 게 분해 죽겠는 모양이다. 결국 엎드려서 끙끙 앓는다. 남은 두 사람은 곤란한 미소를 짓지만. 아직 흥이 깨지진 않은 모양이다.


  "옷 사줄게. 기분 풀어라."
  "달랑 티 하나 사줄 거면서……"
  "그럼 내가 티 사고 시완이가 모자. 어때? 괜찮지?"
  "악. 씨."


  시완이 성난 소리를 냈고, 그제야 광희가 고개를 빨딱 든다.


  "나 티 말고 신발."
  "음… 알았어. 대신 비싼 건 안 돼."


  광희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둘만 가는 건 좀 아쉽다. 







  아메리카노 한 잔. 시럽 빼고 핫 뜨겁게.


  미남이랑 얘기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광희가 어깨를 으쓱 하며 애교 있게 웃어보였다. 나는 좀 어안이 벙벙. 카페는 때마침 손님이 잘 들락거리지 않는 폐점 시간. 광희가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을 들고 웃고 있다. 광희는 왜 하필 오늘 혼자인가. 난 또 왜 금요일 저녁 마감을 혼자하고 있는 걸까. 광희의 말간 눈이 이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사심이 담긴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좀만 앉아서 기다려요."


  광희는 근처 소파에 아무렇게나 앉는다. 뚫어져라 보는 시선에 대걸레질을 하면서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난 지금 긴장하고 있는 거다. 엑스트라에서, 갑자기, 조연, 아니 주연이 됐다. 누구나 긴장할 만한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아. 네. 그래요."
  "이름이 뭐에요?"
  "케빈."


  네. 그쪽은요? 라고 물어보는 게 보통이지만. 이미 알고 있고. 당황했고. 긴장해서. 대화가 뚝뚝 끊겼다. 광희는 인내심이 강한 타입인지, 그게 아니면 신경 줄이 굵은 건지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어냈다. 오랫동안 미소 짓고 있어도 경련 한 번 하지 않는 얼굴 근육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미소를 자주 짓기 때문일 것이다.







  아메리카노 두 잔. 핫하게. 뜨겁게.


  광희가 커피를 받으며 살짝 목례했다.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아서, 난 어색하게 웃고 만다.


  "주말에 웅재랑 뭐 했어."
  "웅재? 아~ 시완이?"
  "그래. 시완이."
  "찜질방 갔어."


  서비스로 나간 쿠키가 광희의 입에서 바삭댔다. 평소 그들은 쿠키 따위 눈길도 주지 않는다. 괜히 광희에게 감정이입이 돼서, 긴장이 몰려왔다. 등이 당긴다.


  "찜질방 전에."
  "클럽 …."
  "게이들끼리 노는 데?"


  광희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 살짝 눈이 마주쳤다. 등이 아프다.


  "뭐 어때. 시완이 별로 거부감 있는 애도 아니고."
  "그래서 둘이서 거길 갔다고? 너 미쳤어?"


  광희는 입을 다물었다. 커피가 식는다. 준영도 화가 나서 쏴대다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 침묵. 침묵. 내가 다 무겁다. 결국 내가 퇴근할 때까지 둘은 마주 보고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오전 근무라서 다행이다. 마감할 때까지 앉아 있었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거다. 카페에서 나왔는데, 시완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 정말. 너네는 무슨 사이니. 대체.







  아메리카노 한 잔.


  "싸웠어?"
  "네. 완전 대판 싸웠죠."


  멍이 들어 알록달록 해진 얼굴을 들고, 광희가 웃었다.


  "약은 발랐어?"
  "아니. 형이 좀 발라줄래요?"


  많이 아픈 모양인지, 광희는 제대로 웃지도 못했다. 아프겠다. 가게에 있는 구급상자에서 연고를 꺼냈다. 연고를 바르는데, 광희가 울상이다. 많이 아픈가. 하긴. 피멍이 들 정돈데. 그래서 아주 살살, 스치듯이 조심스레 발랐다. 그래도 광희는 여전히 울상이다.


  "많이 아파? 바르지 말까?"
  "혀엉."
  "응?"
  "…준영이가 헤어지재요."


  흐어엉. 꼼꼼히 약을 바른 보람도 없이. 광희의 얼굴은 금세 눈물로 범벅되고 만다. 어쩌면 좋냐. 너는. 그리고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쨍그랑.


  "네가 케빈이야?"
  "네?"


  따악.
  으억.
  쨍그랑.
  쨍그랑.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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