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5 (동광)

from 3 2012. 9. 20. 23:10

김동준x황광희




  19살의 소년, 광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삥을 뜯느냐, 그게 아니면 집에 가서 죽이 되도록 맞느냐. 삥을 뜯지 않으면 학원비를 충당할 수가 없고, 그게 엄마에게 알려지면 죽이 되도록 맞는 건 당연했다. 광희 역시 피해자였지만. 광희는 어제 바로 이 골목에서 학원비를 삥 뜯겼다. 하지만 반쯤은 벌써 다른 곳에 학원비를 날려먹은 상태였으므로, 그 친구들을 원망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그 친구들 덕분에 얼굴은 아주 험해졌다. 딱 삥 뜯기 좋을 정도로.


  그러나 광희는 몇 번이나 패배의 쓴 맛을 봐야했다. 첫째 요령이 부족했고, 둘째 타겟으로 삼은 어린 친구들은 주머니가 가난했다. 셋째까지 꼽자면 광희가 싸움엔 영 소질이 없다는 것 정도. 세 명이나 삥을 뜯었건만 수중에 들어온 돈은 5만원도 되지 않았다. 이 정도는 택도 없다. 정말 큰일이다. 광희가 속으로 끙끙대는 사이 누군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덩치도 작고, 어려 보였으며, 안경을 낀 모습이 상당히 유순해 보였다. 쟤까지만 하고 집에 가자. 무서워서 더는 못하겠다. 광희는 스스로를 다 잡고는 그 어린 친구에게 다가갔다.


  "야."
  "뭐."


  어린 친구의 눈이 상당히 다부진 터라, 광희는 약간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키는 내가 훨씬 크니까. 광희는 자신을 도닥였다. 쫄지 않아. 쫄지 않았다. 나 황광희는 지금 쫄지 않았습니다.


  "돈 좀 있지? 형이 지금 돈이 좀 필요하니까, 좋은 말 할 때 내놔라. 있는 거 다."


  광희는 이 대목에서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앞의 세 친구는 좀 쫄았는데, 이 다부진 친구는 비웃음만 픽 날릴 뿐이다. 광희는 어쭈, 싶어서 성급하게 팔을 들어올렸다.


  "얼렁 안 내놔?"


  작고 다부진 친구가 안경을 벗어서는, 가방 안에 곱게 집어넣었다. 올려다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 광희는 점점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맞은 등짝이 아직도 쑤시는데.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잖아. 광희는 흐려져 가는 이성을 다시금 붙잡았다.


  "니가 가가?"


  얼음. 광희는 이 작은 친구가 무슨 말을 내뱉는 걸까 곰곰이 생각했다. 가가? 가가가 뭐지? 사투리라는 건 알겠는데. 가가? 가…가? 가라고? 가란 말인가? 하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는데. 광희가 주춤대는 사이, 녀석의 작은 덩치를 이용해 재빠르게 광희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광희는 그대로 배를 맞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아오, 씨발. 아프잖아 촌놈아! 광희는 신음이 나올까봐 욕도 제대로 못하고, 배를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쪽팔리게 신음 따위를 흘릴 수는 없었다. 


  "오늘은 와 친구들이 없노?"


  그야 당연히 삥 뜯는 거 쪽팔리니까 혼자 온 거지. 속으로 말대답을 하다가 아차 싶다. 어제 그 새끼들이랑 날 착각하는 건가. 그제야 광희의 경고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불량배를 혼내러 온 정의의 사도 뭐 그딴 건가 보다. 머리를 얼른 회전시킨 광희가 몸을 더 웅크렸다. 녀석은 피식피식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광희 쪽으로 걸어온다. 광희는 머리로 녀석의 턱을 강하게 박아버리고는 얼른 내달렸다. 턱이 얼마나 단단한지 머리가 다 얼얼했다. 뒤 쪽에서 큰 소리로 욕이 들려왔다.


  "씨발년아 니 걸리면 죽는다!"


  광희는 눈물을 머금고 달리기에 속도를 올렸다. 저건 진짜 죽일 목소리야!



**



  광희는 엄마에게 죽이 되도록 맞고 학원비를 다시 받았다. 어제보다 얼굴이 더 험해졌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말을 걸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엔 뺏기지 말아야지. 광희는 다짐에 다짐을 하고선 길을 돌아 돌아 학원으로 갔다. PC방도 가지 않았고 분식집에도 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계좌 이체를 하지 아들을 학원비 셔틀이나 시키는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씨발년아 하이?"


  학원에 도착하지 5분전.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껄렁한 '하이?'는 난생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광희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대로에 대로만 골라서 학원까지 도달했는데. 하필이면 여기서 만날 건 뭐란 말인가. 녀석은 오늘은 아예 안경을 끼고 있지도 않았다. 턱에는 시퍼런 멍이 꽤 크게 들어있었다. 광희는 그걸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안녕."


  상당히 심장이 쪼그라든 광희가 볼썽사납게 말을 더듬었다. 녀석은 악마처럼 픽 비웃는다. 


  "아들 삥 뜯은 돈으로 니는 학원 다니나? 그런 돈으로 학원 다니면 성적 잘 나오는 갑지?"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광희는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적이 잘 안 나온다고 받아쳐야 하는지, 삥 뜯은 돈이 아니라는 걸 지적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엄마의 샌드백이 된 후에 학원비를 받아오는 참인데 말이다.


  "너랑 무슨 상관인데?"


  광희는 잠시, 생각하지 않고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멋대로 튀어 나온 말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광희는 제 입을 꼬매버리고 싶었다. 하. 어린 정의의 사도는 대하기가 참 힘들구나. 광희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학원으로 도망쳤다. 아니, 도망치려고 했다. 뒤를 돌자 마다 그 작은 체구의 친구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갔다. 안 그래도 요즘 탈모걱정이 심해진 터라, 광희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광희는 이번엔 떡이 되도록 맞았다. 구석구석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어쩌면 갈비뼈 같은 곳이 나갔을지도 모른다고, 광희는 생각했다. 아, 갈비뼈가 부러져서 심장을 찔려가지고 그래가지고 응급실에 실려 가면 엄마가 울고불고 달려와서는 우리 광희 어떡하냐고 어떡하냐고…


  "니 이 돈 찾고 싶으면 우리 학교로 찾아와서 내 친구들한테 제대로 사과해라."


  녀석이 돈 봉투를 빼앗아 가며 말했다. 제국고등학교 1학년 1반 김동준이다. 알겠제? 광희는 그제야 같은 학교 후배에게 맞은 것을 알고 분통이 터졌다. 녀석은 유유히 골목을 돌아 빠져나갔다. 아. 내 학원비. 광희는 비어져 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진짜 더러워서 학원 못 다니겠네.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05.21 (광총)아메리카노  (0) 2012.09.20
2011.05.18 뱀프케빈  (0) 2012.09.20
2011.04.25 (광케)  (0) 2012.09.20
2011.04.22 (광케)  (0) 2012.09.20
2011.04.13 (동케)  (0) 201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