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3 (동케)

from 3 2012. 9. 20. 23:09

김동준x김지엽



  
  시끄럽다. 시끄러워서 머리가 어지럽다. 처음 온 대학 MT라는 것의 인상은 고작 그게 다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여행 동아리, 하지만 실상은 전국 방방곡곡의 술을 먹는 것이 목적인 이 동아리는 남자가 과반수였다. 우선 이것부터 맘에 안 들었다. 친구가 하도 들어가자고 졸라서 들어왔더니, 찍어놨던 여자애들이 전부 선배 한 명에게 뿅 가버렸다. 바로 이게 맘에 안 드는 두 번째. 세 번째는 뭐냐하면,


  "아, 그게 뭐야~"
  "뭐긴 뭐야~ 니가 이랬잖어 저번에!"
  "와~ 나 진짜 아닌데~"
  "와~ 나 진짜 아닌데~ 완전 똑같지, 그치!"
  "아! 아니야아~"


  그 선배와 다른 선배 둘이 앞에서 술 먹고 투닥거리는 꼴이 꼭 여고생들 같다는 점이다. 둘 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지 하하호호, 난리도 아니다. 눈이 없어질 정도로 눈 꼬리가 휜 게 마음에 썩 좋지 않았다. 아유,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저러냐. 그래서 다른 선배들과 구석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 선배들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자꾸만 귓가에서 왕왕댔다. 정말로, 시끄러운 밤이다.

  소음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깨어있는 사람들도 하나씩 줄어들 때, 바람을 쐬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방 안 가득한 소주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으니까. 나올 때 보니 소음의 주역이었던 하이톤의 광희 선배는 쓰러져서 자고 있었다. 왠지 흡족하고, 이긴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밖에서는 광희 선배 옆에서 명랑하게 웃던 김지엽 선배가, 구석진 곳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도 그 옆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피울래?"


  담배를 주섬주섬 꺼내 내게 건네는 선배의 눈이 약간 풀려 있었다. 답지 않게 담배도 피우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한 대 얻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담배만 뻐끔뻐끔 피웠다.


  "담배도 피우시네요."
  "응. 근데 담배냄새 안 좋아해."  
  "근데 왜 피워요."
  "으음. 그냥…?"


  선배는 담배를 한대 더 꺼내 물었다. 쪼그려 있던 자세를 무너뜨리고 바닥에 푹 주저앉아 버린다. 나는 계집애들이 날 부러워하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 방구석에 쓰러져있는 광희 선배는 그렇지 않을 거다.


  "광희 선배 좋아하죠."


  담배꽁초를 바닥에 지저 끄며 툭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희한테는 비밀이야. 그 말을 하는데도, 그는 너무나 즐거워보였다. 확실히 좀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속이 없는 걸지도.


  
  "내가 소문내면 어쩌게요."
  "음… 넌 안 그럴 거 같아."
  "무슨 근거로."
  "그냥."


  그는 내게 또 한 번 담배를 권했고 난 이번엔 거절했다. 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미치게 불편한데, 방으로 다시 들어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불편은 한 건지,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랑 해봤어요?"
  "와. 너."


  그가 황당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멀뚱히 앞만 보고 있었다. 침묵을 깨려고 한 말이었는데. 그런 말이 툭 튀어나올 줄은.


  "진짜 예의 없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유쾌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먼저 들어간다며 내게 자신의 담배각과 라이터를 쥐여 줬다. 왜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하나. 난 좀. 뭐랄까. 실망했다.




*




  "야. 그거, 뭐냐. 김지엽 선배 있잖아, 게이래."


  5월의 어느 날. 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막, 뭐냐, 희철이형이 그 선배 남자랑 모텔에서 나오는 거 봤데."


  경악. 그리고 술렁거림. 모텔에서 남자와 나왔다는 그 말이 너무나 리얼해서, 나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김지엽 선배보다 키도 컸다고 하는데. 조심 좀 하지. 불쾌감이 밀려왔다. 나는. 아. 흥미본위로 지껄여대는 친구들 사이에서, 머리를 굴렸다. 방구석에서 곤히 자던 광희 선배와, '예의 없다'고 말하던 김지엽 선배의 목소리와, 억양과, 담배 냄새 등이 떠올랐다. 다음 날 내가 그 선배와 단 둘이 얘기한 걸 알고 애 닳아 하던 여자애들의 볼멘 목소리도 떠올랐다. 그리고 그 선배와 얘기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야. 그 선배 게이 아니야."
  "뭐?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그…선배 우리 누나랑 사귀거든."


  벌써 양가 부모님께 인사도 드린 사이야. 그걸로 게임 오버였다. 학교에는 김동준의 누나가 동준이랑은 다르게 덩치도 좋고 아주 터프하게 생긴 분이라고 소문이 났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난 뒤에도, 간혹 술자리에서 내 누나의 얘기가 안주거리로 심심찮게 등장했다. 없는 누나에게 사과를 표시하며, 나는 누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농담을 쳤다. 


  누나 얘기로 수확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김지엽 선배에게 꼬리치던 년들이 다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어. 안녕."
  "안녕하세요."
  "그… 누나는, 잘 계셔?"
  "네. 덕분에."
  "저기. 고마워. 저번에는."
  "별 말씀을요."

  
  아. 아. 나는 선배의 당황한 표정과, 어색해 하는 말투와, 쑥스러운 미소를 보며 속으로 YES를 외쳤다. 담에 밥 먹자. 전화할게. 그가 내 번호를 핸드폰에 입력하는 동안 광희 선배가 어느 샌가 나타나, 수업하러 가야한다고 김지엽 선배를 질질 끌고 갔다. 그는 가면서도 내게 손으로 전화기를 흔들며, 전화할게 전화할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나는 밥 먹고 술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04.25 (광케)  (0) 2012.09.20
2011.04.22 (광케)  (0) 2012.09.20
2011.04.10 광케 여체  (0) 2012.09.20
2011.04.10 (시광동케)  (0) 2012.09.20
2011.03.25 준삼  (0) 201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