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비아 아서

from 2.5/앗임 2014. 8. 21. 00:06

호모포비아 아서

 

1.

 

 

. 죽어버리고 싶다. 으레 숙취로 가득한 아침을 맞이할 때에는 늘 그렇지만, 아서는 죽고 싶었다. 진심으로.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겨우 들어 올리고 바라본 풍경은, 아주 낯설었다. 이마가 띵하게 아파왔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손에 닿는 피부의 온도는, 아서에게 분명한 어떤 것을 알려주었다. 살결 아래 느껴지는 감각은 여자의 부드러운 살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만취했었다는 말로는 변명이 되지 않았다.



……일어났어?”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는 분명히 남자의 것이었다. 아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아서의 등 뒤에서 작은 소음이 일었다. 미쳤어. 미쳤어, 아서 캘러한. 어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흐트러져도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건 흐트러진 것과는 관계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남자와 잤다고? 아니 말도 안 되니까 그냥, ‘사고가 일어났다고 표현해야 마땅했다. 아니야, 자지 않았을 수도 있지. 그냥 자기만했을지도.


그렇다면 발가벗고 있는 몸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서는 평소에 알몸으로 자는 취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직도 술이 덜 깼어?”



남자의 손이 아서의 허리를 파고들어, 그의 가슴에 닿았을 때, 아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맨 가슴에 남자의 손이 닿았던 감촉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너무 싫었다. 아서는 서둘러 샤워기를 켰다. 차가운 물줄기가 아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머리가 아프다. 속이 안 좋아. 아서는 이게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기를 빌었다.



사람을 무슨 벌레취급 하네.”



아서는 세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는 적당한 근육에 약간 덩치가 있는 편이었고, 가슴에 약간 털이 있었다. 아서는 그 점에서 좌절했다가, 머리를 털었다. 뭐라는 거야. 남자는 잘생긴 편이었다. 아니,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잘생겼다. 아서는 순간 멍하니 남자의 벗은 몸과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자신이 샤워를 하는 중이고, 전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좀 너무 하잖아. 난 병 같은 것도 없고. 뭣보다 어제 콘돔 같은 것도 제대로 썼다고.”



아서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남자는 아서의 표정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남자의 다리 사이에 축 늘어진 성기가, 너무 잘 보였다. 그들은 정면으로 서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조금 실망한 것 같기도, 불쾌한 것 같기도 했다. 아서는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치겠군, 정말. 꼭 처녀성 잃은 여자처럼 굴지 말라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서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어제는 미친놈처럼 박아대더니만. 남자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서는 욕실의 문을 닫고, 그리고 확실히 잠근 후에 꼼꼼하게 구석구석 최대한 빠르게 씻어 내려갔다. 얼른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호모라니. , 그 호모랑 잔 게, 나라니. 아서는 욕실 벽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 얼른 도망쳐야했다.



수건으로 겨우 하체만 가리고 욕실 밖으로 나온 아서는 얼른 자신의 옷부터 찾았다. 아서의 옷가지는 침대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아서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서둘러 침대 옆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심지어 옷가지들은 남자의 옷들과 섞여있었다. 아서는 제 옷을 털어가며 조심스럽고 빠른 손짓으로 옷을 입었다. 남자는 자신의 코를 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뭐 내 집이니 나갈 수도 없고.”



남자는 머리를 긁으며 아서를 훑어보고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호텔이 아니라 남자의 집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호텔치고는 많이 어수선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서의 시야에 바닥에 떨어진 콘돔이 들어왔다. 아주 야무지게도 묶여있었다. 정말 죽어버리고 싶군. 욕실로 들어가는 남자가 약간 절룩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도망만 가서는 안 되는 상황인 것 같다. 아서는 조금 울고 싶었다.



단정하게 수트를 차려 입은 아서는 침대를 정리하고 그 구석에 불편한 얼굴로 앉았다. 남자가 욕실에서 나오면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죽어버리고 싶다……. 드문드문 끊긴 기억 속에, 남자의 젖은 얼굴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아서는 답지 않게 다리를 떨었다. 어느 순간 욕실에서 나는 물소리가 끊어졌다. 아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직도 안 갔어?”



남자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침대로 걸어왔다. 아서는 바짝 긴장했다. 그는 허벅지에 힘을 주고 허리를 곧게 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미안하다고? 아서는 남자의 벗은 몸을 쳐다보았다. 하얀 몸에 핑크색 젖꼭지가 도드라졌다. 아서는 그것을 한참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됐다.



, , 어제는…….”

끝내줬지.”

아니, 그게.”

네가 깨어나기 전까진 말이야. 끝내줬어, 아서.”



아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잠시 인상을 콱 찡그렸다가, 고개를 들었다. 임스는 촉촉해진 머리를 털며, 꽤나 촉촉한 눈빛으로 아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서는 이 남자가 얼른 옷을 좀 입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최 불편해서 원.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아요?”



아서는 드디어 그들의 대화에서 모순점을 하나 찾아냈다. 아서, 아서, 아서. 제발. 남자의 축축 젖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거친 숨소리와, 간헐적인 신음소리가 섞인 아서, 아침에 떠올리기엔 좀 자극적인 편이었다. 남자는 간드러진 소리를 내지 않고도 아서를 상당히 흥분시켰다. 아서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제발 집중해. 제발. 아서는 입술에 힘을 주었다.



어제 명함 줬잖아. 기억 안나? 이 명함을 받는 마지막 사람이 될 거라고 했지 않았나?”



남자는 협탁 위에 있던 지갑을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서의 하얀 명함을, ‘꺼내 보이는 것이었다. 어제는 승진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아서는 어젯밤의 기억이 약간 더 돌아왔다. 명함을 준 것은 분명 아서 본인이었다. 아서는 머리를 헝클였다. 모든 게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머리는 내린 쪽이 더 귀엽네.”



남자는 다시 지갑 속에 명함을 끼워 넣었다. 아서는 당장에 그것을 돌려받고 싶었지만, 어쨌거나 준 사람은 아서였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아서의 반응을 잠깐 살피더니, 드디어 바지를 한 장 몸에 걸쳤다. 아서는 한결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엉덩이에 땀이 날 만큼 긴장이 되었다. 남자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이만 나가주면 안될까? 나도 일을 좀 해야 하거든. 아서 씨가 은행에 출근해야 하는 것처럼.”

……, . 미안합니다.”



아서는 그대로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엉덩이를 털고 그의 침대에서 일어난 순간,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서는 알고 있었다. 제대로 된 사과의 말도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고, 뭐에 대한 사과인지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고, 남자는 무척 매력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만 그것을 마음 속 깊숙이 밀어 넣으려고 노력했을 뿐.

 

 

 

 

2.

 

 

오늘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아서가 고정적인 데이트 상대를 가지지 않은 건 꽤 오래 된 일이었다. 18, 그러니까 고등학생 때 같은 학교의 여자 아이와 장난처럼 사귄 거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아서의 연애 경력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아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무성애자라고 수근 거려도 그러려니 넘어갔다. 아서는 차라리 무성애자인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짜 연극표가 생겼거든요.”

연극이라면 총무과의 피터가 더 관심이 많을 텐데.”

그건 좀 게이 같잖아요.”

 

 

캐서린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럼으로 인해서 남자와 여자의 거리가 좀 더 좁혀졌다. 연극=게이라. 아서는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가 어째서 피터가 연극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있었던 걸 캐서린이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캐서린은 아서의 행동이 승낙의 사인인 줄 알고 환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아서는 여직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데이트 내기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제는 나무막대기 같은 아서와 누가 먼저 데이트를 하느냐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가 아서와 먼저 자느냐였겠지만.

 

 

오늘 7시 표니까 마치고 기다릴게요. 도망가면 안돼요!”

 

 

캐서린은 아서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놓고선 웃으며 달아났다. 큰일 났군. 아서는 단정하게 쓸어 넘긴 머리를 긁적였다. ‘데이트 내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가급적이면 회사 직원과는 사적으로 만나지 않는 것이 아서의 철칙이었다. 어설프게 아는 집단에서 비밀을 폭로당하면, 얼마나 잔인한 일이 일어나는지 아서는 이미 겪어보았다. 비록 소문에 불과하더라도, 그 소문에 얼마나 사람들이 쉽게 휘둘리는지도, 아서는 이미 겪었다.

 

아서가 데이트를 승낙한 것은 남자의 목소리가 며칠 내내 아서를 따라다녔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비겁하다고 말하겠지만. 아서는 조금 도망치고 싶었다. 10년도 더 되었으니, ‘성향이라는 것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는가.

 

 

그러나 결국 7시는 오고야 말았다. 아서는 어떤 말로 캐서린을 거절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무성애자라고 소문이 나있는 상태이니까. 그다지 손해 볼 것도 없었다. ‘남자의 이름은 임스였다. 며칠 동안 아서의 감각과 기억은 다행스럽게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남자에 대한 기억이나 인상 또한 그랬다. 기억은 불쑥불쑥 떠올라 아서의 빈 퍼즐을 차곡차곡 맞추고 있었다. 아서가 곤란할 정도로 말이다.



날씨가 좋네요. 실내에 있는 게 아까울 정도로.”

그런가요. 전 실내에 있는 걸 더 좋아해서.”

전 산책하는 걸 더 좋아하거든요.”



여자, 캐서린과 시시한 이야기를 하며 아서는 극장까지 걸었다. 극장은 은행에서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해봐야 겨우 한 블럭 정도. 아서는 가끔 가는 전시회장이 근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조금 몸을 사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연극시간이 약간 남아서, 아서와 캐서린은 옆 건물 1층의 카페테라스에 마주보고 앉았다. 캐서린은 차가운 음료를, 아서는 따뜻한 커피를 시켰다.



덥지 않으세요?”

습관이라서요. 그냥.”



캐서린이 애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서는 넥타이를 약간 느슨하게 만들었다. 여자와 잠자리를 가진 것은 인생에 딱 한 번밖에 없었다. 그래, 아까 말했던 그 데이트상대 말이다. 그리고 그 후로도 잠자리는 아서에게 굉장히 특별한 이벤트에 속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며칠 전의 그 잠자리는 아서에게 상당히 오랜만인 일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할까. 여자는 이미 아서에게 조금 질린 눈치였다. 아름답고 사근사근한 금발의 아가씨니까, 더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이런 일방적인 포지션은 (남자가 그녀에게 매달리는 거면 모를까) 익숙지 않은 것이리라. 그녀가 지루한 것처럼, 아서도 지루했다.



즐겁지가 않아.



그녀와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은 회사 일을 처리하는 것만큼, 감흥 없는 일이었다. 완성된, 완벽한, 서류에 도장만 찍는 기분. 무엇보다 그녀의 금발머리가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아서는 더더욱 그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한 번만 더 자보면 괜찮지 않을까. 아서의 머릿속은 그런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3.

 

 

어디서 일해?”

보통은 침대 위에서.”

설마…….”

가끔은 기차나 뭐, 아무튼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곳에선 다 일할 수 있지.”

농담이겠지.”

가끔 타겟 조사도 나가고.”

 

 

남자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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