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 진지한청립조각

from 2 2013. 7. 3. 22:22

14cm. 



  신장이 큰 선수들은 많이 만나봤다. 내가 농구선수로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도, 그래서 더더욱 신장차가 많이 나는 선수들과 만날 기회가 더 많다는 것도 안다. 나는 높이와 싸우는 것에 익숙하다.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고, 글쎄, 그들의 키나 덩치에 눌리지 않을 만큼 기백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카이조의 주장, 카사마츠 유키오라는 인간이 말이다. 하물며 나는 주장이다. 주장이 꼴사납게, 물론 꼴사나운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겠지만, 키가 크다고 해서 상대에게 주눅 들어선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난 늘 그것을 지켜내며 지냈다. 스스로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이 정도면 꽤 잘 해나가고 있지 않나하고 생각했다.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아오미네 다이키. 


  놈은, 신장도 신장이거니와, 경이로운 플레이, 슛 성공률, 기백, 무엇 하나 코트 위에서 밀리는 것이 없었다. 밀리지 않는다…보다는 '단연 으뜸이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주눅 들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플레이를 했을 뿐. 다만 아주 놀랍고도, 존경심마저 들게 했던 것이 있다면 바로 아오미네의 볼에 대한 집중력이었다. 집착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먹이를 사냥하는 맹수 같은. 눈길로. 그는 한순간도 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으로, "늘 어떤 순간이든 100% 볼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제법인데, 선배. 


  오히려 주눅이 든 것은 그로부터 파울을 얻어내고 난 후였다. 공을 쫓던 그 맹수 같은 눈동자가 온 몸을 스쳐지나갔을 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무서운 선수다.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일으켜 주었을 때, 맞잡은 커다란 손에서, '훌륭한 선수일지도'하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팀플레이에 관한 부분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울었나봐?" 


  아오미네는 거대한 신장으로 문에 딱 버티고 서서는, 아마 울어서 엉망이 되었을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건방지긴. 나는 그의 건방진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비켜"하고 일갈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맹수의 그것이었다. 마주 하고 있는 사람을 아주 껄끄럽게 만드는 종류의. 이 자식은 늘 먹잇감을 찾고 있는 건가. 


  "비키라고 했지." 
  "선배. 1년만 일찍 졸업했으면 좋았을 텐데." 
  "…뭐?"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주 감상하는 말투로 아오미네가 덤덤하게 뱉어냈다. 그는 손을 들어 내 턱 끝을 잡더니,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창피하기도 하고, 고개가 들린 것이 아주 굴욕적이라 그의 손을 탁 쳐냈다. 그는 픽 웃더니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문에 슬쩍 기대서 여전히 길을 막는 것이었다. 그는 여유 있어 보였고, 아주 즐겁게도 보였다. 


  "그러면 선배 나 같은 선수는 만나지 않고 졸업했을 거 아냐." 


  그 말투, 내용, 표정, 어느 것 하나 불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시건방져…. 특히 그 눈빛이, 망할 놈의 눈빛이. 먹잇감을 쫓는, 혹은, 암컷을 보는 수컷의 눈처럼, 상대를 괴롭히고 싶어 하는 마음과, 또 약한 것을 볼 때 솟아나는 애틋함 같은 것이 경계 없이 섞여있었다. 그것을 알아챘다는 것 역시, 기분이 나빴다. 그딴 거 알고 싶지 않다고. 나는 아오미네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고, 그 일그러진 얼굴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준 뒤 "시합 중이라 봐준 줄 알아"라는 말을 남기고 선수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아오미네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할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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