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 비오는 청립조각

from 2 2013. 7. 3. 22:23

*12살 차이나는 청립이 보고 싶어서... 



  쓰읍. 카사마츠는 비가 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하릴없이 팔목을 돌렸다. 비가 내린다. 소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슬비도 아닌 것이, 질척질척 하루 종일 내리고 있었다. 카사마츠는 쿡쿡 쑤시는 무릎을 저도 모르게 손끝으로 톡톡 때렸다. 토오에 온 지도 벌써 3개월 째였다. 학교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농구부라는 것이 여길 가나 저길 가나 비슷한 점은 한두 가지 있기 마련이었고, 이미 20년 가까이 여러 팀을 겪어본 카사마츠로서는 적응이 어렵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다만 힘든 것은, 카사마츠가 주장을 해 본 경험은 있지만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대한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카사마츠는 3개월 전에 갑작스레 뒤바뀐 포지션에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젊고 경험 없는 감독이라 무시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은연중에 존재했다. 


  젊고, 건강한 육체들이, 그 우람한 다리들이 농구 코트를 뛰어다니는 걸 보며, 카사마츠는 무릎을 꽉 쥐었다. 옆에서는 주장인 사쿠라이와 매니저인 모모이가 그들을 보며 무언가 의논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은 정말 싫다니까. 카사마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쿠라이에게 선수들의 개인 연습을 체크하고 그런 뒤엔 해산해도 좋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사쿠라이가 자신에게 고개를 꾸벅이는 것을 보고 카사마츠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확실히 그 전에 비해 한 풀 꺾였다는 걸 스스로도 느낀다. 


  비가 오는 날이라 차는 일부러 챙겨오지 않았다. 카사마츠는 아직도 가끔은 차에 타는 것이 무서웠다. 그는 우산을 펴고 천천히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정문 근처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머리 하나만 쑥 올라온 것이, 덩치가 아주 크다. 거기에 가무잡잡한 피부가 비가 와서 어두운 중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카사마츠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오미네. 연습도 빠지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키 큰 사내, 아오미네는 멍하니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다가 카사마츠를 돌아보았다. 묘하게 시선에 경멸의 감정이 섞인 것을, 카사마츠는 보고야 말았다. 사실 아오미네를 보기 전까지는 그가 연습에 나왔는지조차 몰랐다. 카사마츠 혼자서 어떤 감상에 젖어서 다른 누구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토오의 에이스, 아오미네 다이키는 카사마츠를 감독으로 인정해주지도, 존경하지도 않았다. 카사마츠가 묘하게 주눅이 드는 것도 절반은 그의 탓이었다. 에이스라고 해도 연습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고, 주장인 사쿠라이의 말을 듣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사쿠라이를 자유자제로 다루는 건 아오미네 쪽이었다.), 시합엔 늘 지각이었다. 달래도 소용이 없고, 다그쳐도 소용이 없으니(그에 반발해 아오미네는 “농구부를 그만 두겠다”고 카사마츠를 협박한 전적이 있었다.) 사람이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오미네는 카사마츠를 가만히 쳐다보며 침묵을 지키다가, 카사마츠가 닦달하니 그제야 한 마디 했다. 


  “…사츠키 기다리는데.” 
  “모모이는 체육관에 있잖아.” 
  “그 녀석 우산 안 챙겨 왔대서.” 


  카사마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연습은 왜 빠졌지?” 
  “…라면 먹느라.” 


  아오미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본다면 카사마츠를 한 대 치기라도 할 것 같은 험한 얼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카사마츠는 조용히 그를 노려보았다. 이젠 존대 같은 것은 거의 포기했다. 


  아오미네 다이키. 기적의 세대. 키 192cm에 체중은 80 중반. 8월 31일생 처녀자리. 기적의 세대 중에서도 괴물 같은 플레이로 단연 눈에 띈다. 한 때는 이 선수와 같은 코트를 밟을 날을 꿈꾸기도 했다. 카사마츠 본인이 은퇴를 하지 않고, 아오미네가 외국 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언젠가는. 그것이 아주 헛된 꿈이었다는 것을, 카사마츠는 너무나도 잘 알게 되어버렸다. 카사마츠는 운동화를 신고 있는 아오미네의 발끝을 바라보다가, 옅은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이제 와서 이 새끼를 잡아 족쳐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것이다. 


  “내일부턴 빠지지 마. 특별 메뉴 짜뒀으니까.” 


  ‘네가 언제까지 고교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는 뒷말은 깔끔하게 삼켰다. 그리고 걸음을 떼려는데, 아오미네의 강인한 팔이 카사마츠의 허리를 와락 안았다. 빠ㅡ앙. 오토바이가 지나가며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씨발, 뒈질려고 환장했나!” 목 뒤에서 아오미네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안 그래도 병신인데 아예 작정을 했나….” 


  카사마츠가 놀란 통에 떨어뜨린 우산은 이미 망가진 후였다. 아오미네는 형체만 우산인 그것을 발끝으로 툭 찼다. 주르르륵 내리는 비에 카사마츠의 얼굴에 금세 젖어들었다. 아오미네는 그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더니 ‘쯧’하고 짧게 혀를 찼다. 할 수 없지. 데려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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