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임) 아픈연하남

from 2.5/앗임 2013. 8. 31. 10:23

  꼬박 사흘을 앓고 나서야, 아서는 자신이 아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자고 일어났을 때, 유서프가 조제해준 약과 아리아드네가 사다준 푸딩, 코브가 가져다준 스노우볼 -정확히는 필리파의 것을 빌려준 것이었다.- 등이 마구 널브러진 것을 보고서는 말이다. 아니 사실 아서는 그때까지도 "앓아누웠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저 그는 한결 가벼워진 몸뚱이 -그렇다고 완전히 가벼워진 것은 아닌-을 끌고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 문단속을 하고, 그리고 또 확인을 하고, 한 번 더 점검을 한 후에 일을 하러 나갔을 뿐이다. 앓기 전과 똑같이. 그저 일상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아서는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지하철로 향했다. 


  드림팀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되찾은 후로 코브는 합법적인 일을 하길 원했고, 그에 대한 정보를 아서가 찾아주길 바랐다. 코브는 다시 설계에 참여했으며, 아리아드네는 설계를 하면서도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유서프는 뭄바사로 돌아가지 않고 드림팀과 전속 계약 비슷한 것을 맺게 되었는데, 가끔 사이토가 그를 찾아와 어떤 것을 논의하고 돌아가곤 했다. 그와 별개로 사이토의 원조가 끊어져 사무실을 다시 찾아야했고, 여기서 코브가 말하는 "합법적인" 일에 대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그는 합법적인 일거리와 사무실 운영에 대한 것을 동시에 해결하려고 들었다. 가장 먼저 엇나간 것은 임스였다. 그는 그다지 "합법적인" 일과 어울리는 사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고정적인 팀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크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 트러블이 한꺼번에 터지고, 과도한 업무에 짓눌려 아서에게 병이 난 것은 그때쯤이었다. 


  날이 추워서인지 지하철은 평소보다 붐볐다. 아서는 마치 직장인처럼 그 틈 속에 끼여 덜컹덜컹 몇 정거장을 달렸다. 아서는 최대한 임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직 어디로 갔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그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 싫었다. 아서는 늘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화가 났다. 어차피 오래 같이 일할 사이가 아니었지만, 임스가 훌쩍 떠나버리면 무척이나 화가 날 것 같았다. 혼자서 임스가 어디로 갔는지 수소문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비참한 일이었다. 

  전에 쓰던 창고 같은 사무실의 임대기간이 조금 남아 새 거처가 정해질 때까지는 거기서 지내기로 했다. 아서는 지하철에서 내려 또 10여분쯤을 걸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은 온기 하나 없이 쌩하니 추웠다. 아서는 자신이 감기 몸살로 앓아누운 이유 중에 하나가 사무실 환경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흐에취! 


  재채기를 하고 눈을 뜨니 아서의 눈앞에는 임스가 나타나 있었다. 그는 주섬주섬 뭔가 싸서 안아 들고는 놀란 눈으로 아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은 거야, 달링?" 


  아서의 빨간 얼굴을 보고 임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서는 자신의 얼굴이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빨개지는 것을 순식간에 캐치했다.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었다. 임스는 안고 있던 박스를 바닥에 놓고 아서를 이리저리 살폈다. "좀 핼쑥해진 것 같네." 임스가 아서의 마른 뺨과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서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기 시작했다. 머리에 피가 몰리며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아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창피하다. 아서는 그제야 자신이 앓아누웠었다는 걸, 아팠다는 걸 실감했다. 임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은 거야?" 


  괜찮지가 않아서 아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임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을 뿐이었다. 어딜 가려고 하는 거야? 이제 다 늙은 아저씨 받아줄 곳이 어디 있다고? 뭄바사로 다시 가는 거야? 아님 영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서는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생기는 것이 싫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서는 조금 울적해졌다. 


  "저건 다 뭐야?" 


  임스는 애매하게 웃어보였다. 아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부은 목이 힘겹게 침을 넘겼다. 열이 나고 따가웠다. 


  왜 당신한테 나는 필요하지 않은 건데? 


  머리가 핑 돌았다. 눈두덩에 열이 올랐다. 아프니까 사람이 감상적으로 변하는 모양이었다. 아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아서의 이마와 눈두덩에 차가운 감촉이 닿아왔다. 임스의 손이었다. "괜찮아, 달링?" 임스가 또 한 번 물었다.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라고 중얼거리는 임스를, 아서가 조용히 끌어당겨 안았다. 아서는 임스의 강인한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눈을 감았다. 임스의 몸이 잠깐 경직 되었다가 다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임스의 두툼한 손이 아서의 단정하고 뜨끈한 머리 위에 얹혔다. 


  "많이 아픈 거야? 데려다 줄까?" 


  아서는 이렇다 저렇다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임스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고 비비적댈 뿐이었다. 임스가 자기를 돌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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