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9 (준삼) 바보

from 3 2012. 9. 20. 23:02

이창선x양승호





  웃지 마, 바보야.


  창선이는 섹스를 할 때마다 그런 식으로 꾸짖는다. 내가 웃으면 하체가 녹아버릴 것 같다나. 다 녹아버리면 나도 손해고 이창선도 손해고. 나는 그래서 잘 웃지 않게 되었다. 간지러워도 부끄러워도 웃음을 꾹 참고 위엄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창선이는 곧잘 무표정한 얼굴로 내 다리사이를 노려보았다. 섹스를 할 때 그는 진지하기 짝이 없다. 사실 그 표정도 웃기다. 바보 같은 놈. 내 사랑하는 바보새끼. 그가 뜨거운 숨을 내 가슴팍에 쉴 새 없이 밭아낼 때, 나는 그 머리를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 그렇게 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머리를 꼭 끌어안으면 창선이는 화를 낸다. 답답하다고. 


  나는 가슴이 답답하면 이창선을 만난다. 그는 내게 출구며 입구고 현실도피이자 현실이다. 그를 만나면 열에 아홉은 섹스를 했다. 그는 보기와는 다르게 섹스에 서툴다. 처음 했을 때는 숫총각 같이 수줍어했다. 어쩌면 부끄러워서 나보고 웃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기적인 놈 같으니라고. 이기적인 바보. 만남이 일 년 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그의 섹스는 여전히 서툴다. 아마 바보라서. 그럴 것이다.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감기에 걸린 이창선은 바보가 아닌가, 여전히 바보인가. 기왕 그렇게 된 김에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놈은 바보같이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침대 위에서 골골거리고 있었다. 역시 바보. 나는 사갔던 죽을 그에게 떠먹여주었다. 나답지 않은 친절한 일이었다. 사실 괴롭혀주려고 갔던 거지만 너무 힘들어보여서 관뒀다. 창선이는 아무것도 모르고는 나보고 고맙다며 웃었다. 바보. 바보 같은 놈. 밥과 약을 먹인 후에는 젖은 수건으로 창선이의 몸을 닦았다. 그는 몽롱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나한테 시집올래?


  라고 흘렸다. 기다렸던 말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 동거하던 애인의 집에서 쫓겨났으므로. 나는 창선이의 그런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찜질방에서 지내는 것도 지겨웠다. 나는 창선이가 열에 못 이겨 잠든 틈에 친구 집에 맡겨두었던 짐 가방을 가지고 왔다. 짐을 푸는 데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속옷과 옷 몇 가지 그리고 타블렛 PC 한대가 다였다. 창선이가 돈을 잘 벌면 노트북을 하나 사달라고 할 텐데. 안타까움에 한숨이 났다. 이 바보 같은 놈은 내가 사달라고 하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사줄 것이다. 그래서 돈을 잘 벌어야 하는 것이다. 없는 돈을 터는 건 무서운 일이니까. 


  창선이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병자답게 일어나자마자 물을 찾았다. 나는 아주 친절하게 물병 째로 갖다 주었다. 아침부터 눈웃음을 질질 흘린다. 귀엽게시리. 입술에 가볍게 쪽 뽀뽀를 해준 뒤 말했다. 시집왔어. 창선이는 멍하니 내 얼굴을 보았다. 바보 같지만 귀여워. 내가 멀뚱하니 저를 쳐다보고 있자, 그는 슬쩍 웃었다. 오늘이 신혼 첫날인가?   바보였다. 역시 바보. 신혼 첫날은 너의 병간호로 모두 지나가버렸는데. 괘씸해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병자라서 참았다. 창선이의 열은 많이 내려가 있었다. 음. 이제 정상적으로 활동해도 되겠어.


  짐은 이게 다야?
  어.
  혼수는?
  자, 여기.


  나는 내가 입던 팬티를 창선이에게 내밀었다. 그는 심하게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는 텀을 두고서 이렇게 물었다. 전에 있던 집에선 나온 거야? 나왔지. 완전히 나와 버렸지. 그는 또 바보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팬티를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이거 네 팬티 확실하지? 뭐 그 남자가 입었다든가 뭐. 


  시집을 잘못 왔나. 창선의 말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고 소파에 널브러져 버렸다. 혼수는 이게 다야? 어제 죽도 사오고 약도 사왔잖아. 그게 다야? 그래, 그게 다야. 창선이 아쉬운 표정으로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좀 더 화끈하고 뭐 그런 거 없나. 화끈한 주먹맛 좀 볼 테야? 명랑한 내 대답에 창선이는 그 덩치가 아깝게 한동안 구겨져 있었다. 


  아니 뭐 이렇게 홀랑 들어와 버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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