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선x양승호





  승호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혼수는 달랑 팬티 한 장. 난 다음날 당장 그 팬티를 껴입고서는 시내를 돌아다녔다. 조금 찝찝해서 그 안에 삼각을 하나 더 입긴 했지만. 썩 나쁘지 않은 감촉이었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집에 오니, 집은 이미 승호가 점거하고 있었다. 분명 들어올 때는 짐 가방 하나뿐이었는데, 집안 구석구석에 승호의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썩 좋지는 않았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서며 승호의 여행 가방을 노려보았다. 저건 어디서 난 마법 가방일까. 양승호가 거쳐 온 그 수많은 남자 중에는 마법사도 들어있단 말인가.


  "아직도 자? 회사는?"
  "…오후 출근."
  "뭐라도 좀 먹지."


  눈을 감고 입으로만 웅얼거린 승호가 기운 없이 팔을 흔들어 보였다. 게임소프트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뻑하면 밤을 샜다. 그리고는 다음날은 오후 출근을 하거나 아예 회사를 쉬었다. 세상엔 저런 회사도 있구나, 싶다. 우리 승호가 참 수고가 많다. 나는 얌전히 자고 있는 승호의 이마를 도닥여주고는,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글이 잘 써진다.


  신은 내게 조리 있게 말하는 능력 대신 조리 있게 글을 쓰는 재주를 주셨다. 하지만 조리 있는 글은 그 뿐으로, 잘 팔리진 않았다. 어중간한 글쓰기로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남의 글을 대필해주기 시작했다. 생각 외로 꽤 짭짤했다. 책도 어느 정도 팔렸고, 일은 끊어질 만 하면 하나씩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내 글'을 써본 지가 오래 됐다는 건 좀 슬픈 일이었다.


  승호를 만났을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 좀 더 무기력했다.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승호는 만날 때마다 섹스를 요구했다. 기가 전부 빨려 나가는 것 같아도 난 그에 응했다. 그는 매번 날 구박했다. 내가 보기랑 다르게 서툴러서 귀엽다는 말도 했다. 그에게 다른 애인이 있다는 걸 안 것은 만난 지 한 달 조금 지났을 때였다. 그의 몸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애인에게 맞은 것이라고, 난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섹스가 끝나고 나면 울곤 했다. 애인에게 맞은 자리가 아파서 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픈 주제에 날 찾아오다니, 암만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픔이 아픔을 잊게 해주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나. 밥."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승호가 거실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 나오며 말했다. 인상을 잔뜩 쓰고 입술을 댓발이나 내민 게 귀엽다.


  "…지금 반찬 없을 텐데."
  "그럼 뭐라도 시켜줘."
  "아. 잠깐만."


  배달음식 책자를 찾아서 갖다 주니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메뉴를 고른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
  "그럼 치킨 시킨다?"


  승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기를 집어 든다. 내 핸드폰. 그는 쉽게 비밀번호를 풀고는 전화를 한다. 아직도 잠에 잠겨있는 목소리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물을 한잔 마시고, 화장실까지 갖다온 승호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무겁다. 같이 헬스라도 좀 다녀볼까. 나는 그의 몰랑한 뱃살을 주물럭거리며 한동안 그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만지지 마."


  한참이나 있다가 승호가 내 손을 제 배에서 떼어냈다. 난 다시 끈질기게 그의 살을 쪼물딱 거린다.


  "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떼어낸다. 그래서 허벅지를 주물럭거렸더니 이번엔 또 가만히 있다. 여기도 살이 상당히 올랐구만. 내가 저의 몸을 구석구석 주무르는 동안 승호는 컴퓨터로 어느새 인터넷 삼매경이었다. 매일 보는 컴퓨터 지겹지도 않나. 그의 눈은 아까보다 훨씬 초롱초롱했다. 흥미 있는 기사거리라도 발견했나 싶어서 모니터를 봤더니 웹툰을 보고 있었다. 괜히 심통이 나서 바지 안으로 손을 쓱 집어넣었다.


  "어허."
  "어허어?"
  "어허어!"
  "어허어어?"


  승호가 엄한 소리를 몇 번인가 내더니, 곧 몸을 비틀었다.


  "웹툰 보지 마."
  "왜! 아 너나 만지지 마."
  "웹툰 안 보면 안 만져."
  "아 싫어."
  "싫어? 싫으면 시집가라."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보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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