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민호 x 고딩갤리

섬님께 드립미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시위라도 하듯이, 그렇게 아주 빠르고 공격적으로 추위가 찾아왔다. 나는 추위에 약한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따뜻한 지방에서만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에 태어난 것이 한몫 했는지도. 어쨌거나 이 도시의 추위는 내게 도저히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장갑을 낀 손을 코트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넣고 길을 나섰다. 날이 지니 공기가 더 차가웠다.

 

익숙한 듯, 그렇지 않은 듯, 커다란 인영이 보인다.

 

 

민호, 민호!”

 

 

나는 모르는 척 걷는 속도를 높였다.

 

 

……속이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결국 붙잡히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갤리는 키가 컸고, 추위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온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목도리도 없이, 장갑도 없이, 모자도 없이 나를 기다린 것을 보면. 그는 이 도시의 추위에 익숙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얼굴은 빨갛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의 얼마 되지 않는 매력 포인트 중의 하나인, 주근깨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친다.

 

 

미안해요.”

 

 

갤리는 머뭇거리며 날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빨간 손은 어쩌면, 지금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 속의 손을 꼼지락거렸다. 끼고 있는 가죽장갑은 여기 와서 처음 사귄 친구, 뉴트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뉴트는 염세주의자처럼 구는 주제에 퍽 섬세한 면이 있었다. 그도 게이였다. 나처럼. 그리고 여기 내 눈앞에 있는 어린 아이, 갤리처럼. 별로 뉴트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 하려고 기다렸어요.”

 

 

그렇다고 갤리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딱히 아니었다. 그런데 왜 죄 지은 사람처럼 갤리는, 하루에 몇 통씩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을까. 대부분의 내용은 속여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와 했던 섹스는 좋았다. 정말이지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좋았다. 보통 여기 애들은 경험을 빨리해, 민호. 뉴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스물하고도 두 살에 첫 관계를 가져보았다. 소꿉장난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애들에게 여러 번 차였다. 그 이후에 치른 첫 경험은, 정말 너무 웃기게도 원나잇이었다. 거기에 상대는 아저씨.

 

나는 갤리의 손을 붙잡았다. 차갑다.

 

 

차나 한잔 할래?”

 

 

나는 그 말이 너무 아저씨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를 먹을 걸로 꼬셔서 납치하려는 못된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했다. 갤리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잠시 걸었다. 괜찮은 카페가 어디 있더라. 생각을 하다가도 갤리의 손이, 차가운 손이 자꾸만 나의 의식을 그에게로 가져다놓았다. 결국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코코아가 한 잔, 라떼가 한 잔.

 

갤리는 꼭 교무실에 불려온 학생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카페 안은 따뜻했다. 나는 장갑과 목도리를 벗어 테이블위에 곱게 올려두었다. 갤리는 한참이나 입술을 짓씹다가, 입을 뗐다.

 

 

……그렇게 연락 다 씹을 건 없었잖아요.”

좀 당황스러워서.”

스토커 취급 받을 줄도 몰랐고.”

거의 스토커던데 뭘.”

 

 

갤리의 못난 눈썹이 구겨진다. 나는 조금 웃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이는 이제 뭐라고 정의해야 옳을까. 갤리와는 총 3번을 만났고, 3번의 섹스를 했다. 적어도 대학생은 된 줄 알았다. 요즘 아이들은 다 이렇게 조숙할까. 나는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다. 나는 저녁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약간의 불면증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갤리와 만난 날은, 체력을 많이 썼기 때문인지, 아주 잘 잘 수 있었다.

 

사실 이대로 헤어지기는 좀 아쉽다.

 

 

아저씨한테는 좋은 일 아니에요?”

뭐가.”

나 같은, 영계……, 제 발로 찾아온 건데.”

난 아저씨여도 성인인 쪽이 좋은데.”

 

 

갤리는 구시렁거리며 커피 잔에 입술을 가져갔다. 난 저 입술의 맛이 어떤지 알고 있다. 얼마나 맛있는지. 잘 알고 있어. 짓씹는 바람에 빨갛게 피가 맺혀있는 입술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은 아저씨들이 네 입술을 맛보게 될까? 생각하면 약간 괴롭다. 갤리의 연락을 철저히 피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저질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갤리의 입술에 우유가 묻는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벌써 며칠 째, 눈은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내 속에서 갤리에 대한 감정이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듯이.

 

 

지긋지긋하게 내리네.”

난 좋던데.”

난 그냥 겨울에 관련된 모든 게 싫어.”

내가 그냥 싫듯이?”

 

 

고개를 돌렸다. 갤리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연녹색의 눈은 무언가, 갑갑한 물기를 담고 있다. 사춘기의 아이는 너무 복잡하다. 복잡해서 다루기 어렵고, 복잡해서 싫다. 나는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이 좋았다. 갤리가 답을 원하는 것처럼 내 눈을 길게 응시한다.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까. 입 안이 텁텁하게 마른다. 넌 나와 뭘 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나는?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아스팔트와 닿은 눈을 녹아내리고, 코코아 안의 마시멜로우는 이미 반 이상이 녹아 없어져버렸다.

 

 

싫은 건 아니야.”

그럼 뭔데요.”

그냥. 걱정이 되는 거지.”

걱정은 저희 부모님으로 충분한데요.”

아저씨 같다는 말 돌려서 하지 않아도 돼.”

꼰대 같다고 말한 건데요.”

 

 

푸우. 한숨이 흘러나온다. 넌 뭘 하고 싶은 건데?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사춘기의 아이를 다루는 것은 처음이다. 나는 그 흔하다는 동생도, 후배도 없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온 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었는지라. 조카의 얼굴을 본 것도 딱 한 번뿐이었다. 그래. 나는 지금 당황하는 중이다. 갤리는 말을 망설인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코코아를 한입 더 마셨다.

 

 

그냥. 쉽게 가자고요.”

?”

섹스나 한 번 더 해요.”

 

 

대답만 기다리던 눈은 이제, 어떤, 이상한 활기 같은 것을 띄고 있었다.

 

 

……대충 이별 선물이라고 생각하자고요.”

 

 

그 많은 문자와 전화가, 이 한 마디로 압축될 수가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갤리는 이미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챙길 짐이라는 것은 그의 휴대폰밖에 없었다. 그는 내 목도리를 집어 들고 테이블 너머로 몸을 뻗고 내 목에 칭칭 목도리를 감는다. 얼른 일어나요. 갤리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감겨온다. 나는 어딘가에 홀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별 선물이란 말로 포장하지만, 이게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 갤리 역시 그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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