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민호로 민갤

 섬님께 드리는 글~!

 

 

- 토마스가 제발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주세요, 아멘.

 

 

소년 갤리는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요즘 자기 전에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도를 할 때마다 가슴 한 구석에 딱딱한 무언가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토마스가 사라진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사실 토마스가 그렇게 미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가장 친한 친구 트리사를 토마스가 빼앗아갔을 뿐. 껄떡댈 때부터 알아봤어. 언젠가 엄마에게서 들었던 단어를 중얼거리며, 갤리가 인상을 썼다.

 

 

한심하네. 그런다고 그 여자애가 돌아올 거 같아?”

 

 

꿈인가? 갤리는 갑자기 사뿐히 나타난 남자의 모습에 두 눈을 비볐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라. 어제 봤던 책에서 악마는 검은 머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악마라고? 갤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불을 끌어당겨 안았다. 하하핫. 남자는 갤리의 모습에 소리 내어 웃는다. 그리고 웃음소리를 따라서 남자의 뒤에 달려있던 꼬리가 유려하게 곡선을 그린다. 꼬리는 만화나 동화에서 나왔던 모습대로 아주 뾰족한 끝을 가지고 있었다.

 

 

, , 누구세요?”

글쎄? 네가 날 불렀잖아.”

……, , , , 악마예요?”

 

 

하하핫. 남자는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악마라고? 이불을 쥐고 있는 갤리의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갤리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악마는, ‘너 정말 못생겼구나.’라며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었다.

 

 

, , 아멘이라고 했는데!”

 

 

카하하핫. 남자는 한층 높은 소리로 웃었다. 신기하게도 악마는 웃을 때마다 아주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어. 갤리는 뭔가 자신을 보호해줄만한 것이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침 얼마 전 엄마에게서 받은 성경이 눈에 띄었다. 갤리는 후닥 성경을 품에 안았다. 악마의 눈이 가늘어진다.

 

 

갤리. 악마를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

 

 

갤리는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악마는 목을 양쪽으로 까딱까딱 흔들더니 이어서 말했다.

 

 

신이야.”

……거짓말이잖아요.”

아냐. 진짜. 하늘에 맹세코.”

 

 

하늘에 맹세코? 갤리는 인상을 찌푸리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악마는 몸을 붕 띄우더니 다시 갤리의 시야를 차지한다. 저걸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 거짓말이에요. , 성경을 보면…….”

보면?”

 

 

곰곰이 생각하니 틀린 말도 아닌 거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갤리는 아직 성경을 끝까지 읽어보지도 못했다. 아직 갤리의 수준에는 너무 어려운 단어가 많은 탓이었다. 갤리는 손에 땀이 차는 걸 느꼈다. 그는 애꿎은 성경 표지만 펼쳤다가 덮었다가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성경은 사라졌다가 악마의 손에서 다시 하고 나타났다.

 

 

이런 건 다 가짜야, 갤리. 그리고 난 진짜지. . 만져볼래?”

 

 

악마가 손을 내밀었지만 갤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악마의 불에 타서 죽으면 어떻게 해? 그런 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갤리가 깔끔하게 무시하자, 악마는 손을 다시 거뒀다. 그리고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었다.

 

 

우린 말야.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줘. 바쁜 신을 대신해서 말이야.”

 

 

갤리가 미심쩍은 얼굴로 악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요즘 계속 들어오던 민원이 너라서 찾아온 거지.”

 

 

악마는 뒷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악마는 손을 뻗어 갤리에게 그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10월 말부터 오늘 날짜까지 수첩에는 ‘GALLY’라는 단어가 하루도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토마스가 트리사와 친해진 것은 10월 중순쯤이었으니, 아마 악마가 하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소원을 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 맘에 들면 그냥 오는 거야. 뽑는 기준은 신경 쓰지 마.”

 

 

갤리는 눈썹을 한 번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미심쩍은 사람, 아니 악마였다. 악마는 뒷주머니에서 빈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갤리의 침대에 살포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것이었다. 그는 갤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살펴보더니 종이를 내밀었다.

 

 

네 소원은 그거야? 토마스가 사라지는 거? 확실히?”

 

 

갤리는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설마 진짜 사라지라고 기도를 했겠어! 토마스가 정말로 사라진다면 아마 갤리는 평생 죄책감을 느끼며 살 것이었다. 토마스 때문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억울했다. 민호는 갤리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까닥거렸다. 그건 아마 그의 버릇인 것 같았다. 갤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 악마를 어떻게 돌려보내지?

 

 

그런데 우리에겐 딱 한 가지 룰이 있어.”

……뭔데요?”

소환한 사람은 꼭 소원을 빌어야한다는 거지. 물론 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거고.”

취소할 수는 없어요?”

미안해, 우린 반품은 안 돼.”

 

 

갤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주 사소한 소원을 빌어서 악마를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어린 갤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꼼수였다. 어떻게 하지……. 갤리는 얇은 잠옷 소매를 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어볼까? 그렇다면 행복에 대한 대가는 뭐지? 설마 날 지옥으로 데려가려나? 갤리는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지옥을 떠올려봤다. 갤리는 혼자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대신.”

 

 

악마는 즐거운 어조로 갤리는 불렀다.

 

 

대신 계약을 원하는 만큼 미뤄줄 수 있어.”

제가 죽을 때까지요?”

죽기 직전이면 더 좋지. 인간이 죽기 전에 빌 소원은 딱 하나잖아?”

 

 

그 대가로 내 영혼은 지옥불에 떨어지겠지. 갤리는 오들오들 떨었다. , 주여. 제발. 급기야는 두 손을 꼭 마주 쥐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악마는 싱글싱글 웃어보였다. 언제가 좋겠어? 속삭이는 목소리에 갤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10년이면 갤리도 어른이었다. 어른이면 이 악마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갤리가 막연히 생각했다. 악마의 앞에는 여전히 계약서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10, 이면 되지 않을까요……?”

확실히 말해줘야지. 이건 계약이거든.”

 

 

계약이라니. 갤리는 덜컥 겁이 났다.

 

 

“10년 뒤 오늘이요.”

. 좋아.”

 

 

악마는 종이에 진지한 얼굴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멋들어지게 그 밑에 자신의 이름을 써갈기는 것이었다. 계약서는 곧 갤리의 눈앞에 내밀어졌다. 악마는 검은 깃털이 달린 기다란 펜을 갤리의 손에 쥐어주었다. 갤리는 덜덜 떨며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계약서 제일 밑에는 ‘MINHO’라는 글씨가 작게 적혀있었다.

 

 

민호? 이게 이름이에요?”

그래. 멋지지?”

 

 

갤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는 손가락을 곧게 펴고 사인란을 정확히 가리켰다. 얼른 사인해. 무언의 압박임을 어린 갤리도 알고 있었다. 갤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툴게 ‘GALLY’라고 썼다. 아직 어린 갤리에게는 멋진 사인이 없었다. 갤리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펜을 민호에게 내밀었다.

 

 

그건 가져. 기념이잖아.”

 

 

민호는 씨익 미소를 지어보이곤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하고 사라지는 바람에, 갤리는 한참동안이나 그를 찾아서 방안을 두리번거려야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갤리는 마치 꿈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 안에 남아있는 검은 펜과, 이불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따뜻한 느낌이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이불에 실례를 하니!? 아침에 들을 엄마의 잔소리를 생각하니 눈앞이 까마득해지는 갤리였다.

 

 

갤리가 악마를 다시 만난 것은 정확히 10년 뒤였다. 갤리는 그만 그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마침 갤리가 토마스에게 차인 뒷날이었다. 갤리 인생에 두 번째 실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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