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동삼)너호모야?

from 3 2012. 9. 20. 22:40

김동준x양승호



  "야, 너 호모야?"


  그 말이 가슴을 콕 찔렀다. 그런가. 나는 호모인가? 19년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마치 불청객같이. 불청객은 집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고, 아무렇지 않게 거실 소파를 점령했다. 난 정말 호모인가? 어느새 안방 침대까지 차지하고 드러누운 불청객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나를 비웃었다. 내가 호모라고? 설마…말도 안 돼! 불청객이라도 손님이라고 손님 대접을 원하며 차를 내오라고 땡깡을 쓰는 걸 내쫓고 싶었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양승호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나 게이같이 생겼어?"


  모르겠는데. 시큰둥한 친구의 대답에 일순 마음이 놓였지만, 귓가에선 여전히 양승호의 목소리가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호모냐'는 물음에 형을 쫓아다니는 게 게이에게만 허락되는 거라면, 기꺼이 그렇게 되겠다고 답했다. 그는 기가 막힌 듯 허, 웃었고 그런 다음에는 이렇게 말했다.


  "너 그렇게 말해놓고 얼마 안 있음 고백할거지?"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양승호는 초조해 보였고, 나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하듯 그에게 약속했다. 내가 그에게 고백하지 말아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백할만한 것이 없는데. 난 그가 그토록 혐오하는 게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실 여자도 아니었고, 그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혼란에 휩싸였다.


  고백 ①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함.
  ②<<천주>> 참회자가 죄를 용서 받으려고 고해 신부에게 지은 죄를 솔직히 말하는 일.


  내가 고백의 뜻을 혹시 잘못알고 있나 싶어 국어사전까지 뒤졌지만, 역시나 내가 그에게 고백할만한 일은 없었다. 첫째 난 그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없었고, 둘째 난 그에게 죄를 지은 것이 없었으며, 셋째 그는 신부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는 명쾌하게 답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구석이 여전히 찜찜했다. 뭘까 이 기분…아니 감정, 아니 생각… 아니 찌꺼기는. 뭔가의 찌꺼기가 씻겨나가지 못하고 가슴에 진득하게 붙어있는 기분이다.


  양승호는 어렸을 때부터 호모를 많이 만나봤다고 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꽤 여러 번. 양승호의 첫 번째 담임이 그러했고, 첫 번째 단짝 친구가 그러했으며, 첫 번째 애인과의 헤어짐이 그러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꽤 똘똘했고,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그는 어른들의 칭찬과 사랑과 눈길을 받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것들을 얻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생애 첫 담임선생님도 그에겐 그런 굶주림의 대상이었고, 노력 끝에 그의 갈증은 채워질 수 있었다. 양승호는 담임의 눈길과 사랑과 칭찬을 첫 번째로 받는 아이가 되었고 물론 그때 그는 행복을 느꼈다. 담임은 다른 어른들보다 원 없이 그의 욕구를 채워주었으므로. 담임이 양승호를 단순한 학생 이상으로 느낀 것이 문제였지만. 양승호는 강간을 당할 뻔했고, 게이라는 존재에 대한 첫 깨달음을 얻었으며 중년 남성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첫 번째 단짝 친구 얘기는 조금 더 긍정적인 편이었다. 그 친구와 여전히 연락까지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양승호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고,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게이를 혐오하게 되었다. 단짝 친구는 어린만큼 솔직했고, 눈물을 질질 짜면서 그에게 고백을 했다. 받아주지 않으면 절교해버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마음이 약했던 12살 양승호는 처음으로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됐다.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가볍게 뽀뽀정도는 했다. 그 친구가 너무나 원했으므로.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뽀뽀하는 걸 누군가에게-그는 기억 상 좀 좋아했던 여자아이였던 거 같다고 말했다.- 들켰고,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쫙 퍼졌다. 그즈음 해서 양승호는 서울로 이사 오며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친구는 헤어질 때도 고백할 때와 같이 질질 짰는데, 양승호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헤어지는 게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양승호는 주변의 그 누구보다 게이의 대시를 많이 받으며 자라왔다. 물론 지금도 끊임없이 누군가 양승호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다. 첫 번째 애인은 그것의 피해자나 다름없었다. 스무 살. 파릇파릇한 나이의 양승호에게 애인이 생겼다. 잠자리까지 같이 하는. 양승호는 그녀가 예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난 믿지 않는다. 순 얼굴만 밝히는 주제에.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이러하다. 양승호에게 추파를 던졌던 게이가 애인과 몸을 섞는 걸 정면으로 본 양승호는, 그날 부로 연락처를 바꿨다. 이별의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첫 번째 연인(12살 단짝친구를 제외한다면)과 이별을 한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바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것들도 곧 혐오하게 되었다.


  호모. 게이. 바이.
  양승호는 왜 호모를 호모라고 부를까.
  그리고 나는 왜 그에게 말할 때 꼬박꼬박 게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까.


  "또 왔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페였다. 누나가 알바를 하고, 그 사장과 꽤 친분이 두텁고, 양승호가 피아노를 치는. 카페. 양승호는 카페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겉보기는 순 양아친데,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양아치. 양승호.


  "너도 그만 좀 포기해라. 형은 호모가 아니에요."


  …나도 호모는 절대로 아니에요. 바이일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게이 다음으로 혐오하는 바이.


  "알바 끝났어요?"
  "어."
  "이제 집에 가요?"
  "어."
  "누나는요?"
  "안에."


  양승호가 바닥에 담배를 지져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바가 끝났다면, 그는 왜 굳이, 카페 앞 골목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을까. 혹시 나를 기다렸나. 그런데 왜, 나는, 카페 안에 있는 누나의 안부를 물어놓고는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가는 것일까. 문제집 두 권에 연습장 하나, 필통, 교통카드 등이 들어있는 가방이 묵직하게 어깨를 짓눌려왔다. 손에 꼭 쥐어진 핸드폰은 한참 전에 배터리가 닳아 꺼져있다. 가방 속에 여분 배터리가 있지만 굳이 바꾸지 않는다.


  우리는 조용히, 말없이, 굳이 질문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채로 골목을 걸었다.


  사박사박. 자극적인 소리와 함께 옷가지가 흐르듯 바닥으로 떨어진다. 벗겨져 나간다. 양승호의 맨들맨들한 등을 보며, 난 거기에 잇자국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양승호의 친구라는 작자와 말이다. 그는 내 눈을 잠깐 동안 들여다 본 후 양승호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 저 사람이 과연 양승호의 친구가 맞을까. 맞다고 하면 양승호는 어째서 저렇게 위험한 눈을 하는 사내를 친구로 두고 있을까. 문득 양승호의 첫 번째 단짝이 생각났다.


   양승호에게 나는 뭘까.


  "마실 거 좀 갖다 줄까?"
  "난 콜라."
  "저 가볼게요."


  별안간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날 보며, 양승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양승호의 눈빛을 보고, 그렇게 편한 사이의 친구는 아니 구나 짐작한다. 그럴 만도 했다. 양승호가 옷을 갈아입을 때 그를 쳐다보는 눈빛이 보통은 아니었으니까. 분명 게이 아니면 바이였다. 양승호는 그 둘을 묶어 호모라고 부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가방을 메고 자취방을 나서려는 나를 붙잡는 양승호의 손이 밉다. 그의 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고,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마른 입술을 초조하게 축이는 저 요망한 혀를 아예 뽑아버렸으면 싶다.


  "내일 봐요."
  "내일도 오게? 너도 참 징하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진 마요."


  문제집 두 권에 연습장 하나, 필통, 교통카드 등이 들은 가방이 묵직하게 어깨를 짓눌러왔다. 양승호의 매끈한 등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에게 난 뭘까. 난 단지 그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멋있어서, 좋아서, 신기해서 쫓아다니는 것뿐이다. 단지 그것뿐인가? 필통과 배터리가 부딪히며 덜그럭 덜그럭 소리가 난다. 덜그럭 덜그럭. 기분이 이상하다.


  양승호는 나를 좋아한다. 내가 바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내게 '호모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붙잡았던 것이다. 좋아한다고 말해볼까.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고 기뻐할 지도 모르겠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어쩌냐. 난 호모가 아닌데.'라고 말하며 날 약 올릴지도ㅡ모른다. 모르겠다. 난 양승호를 좋아하는 건가?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양승호가 '호모냐'고 물어온 그 이후부터, 그가 신경 쓰여서 미칠 것 같다는 거. 그가 나빴다. 아무 생각 없던 나를 자극했으니까. 자꾸만 신경 쓰게 만드니까.


  내일은, 좋아한다고 한 번 말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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