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희x양승호


  가끔, 하늘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창밖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진짜 하늘을 본 지가 얼마나 됐더라ㅡ. 머리가 어지럽다. 햇볕을 쬔 지는 얼마나 됐지? 머리가 띵띵 울리는 와중에도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다. 마치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마지막 메세지 같다. 그래서 다시 눈이 가물가물 감겨버린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더 잘 수 있다는 뜻이다.


  "죽었냐?"


  익숙한 목소리와 억양이 익숙하게 귀 가장자리서부터 중앙까지 파고들었다. 역시, 조금 더 자도 문제 없다.


  "털쌤!"


  으어어어어어. 정체불명의 웅얼거림만 나올 뿐, 입 안에서는 제대로 된 언어가 연성되지 못한다. 뭉개지고 뭉개져, 혀끝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만 할 뿐.


  "야!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양쌔애앰…"
  "그래. 양쌤 여깄다. 눈 좀 떠봐, 새끼야."


  흐릿한 시야 가득 승호가 보였다. 오랜 침묵 끝에 승호는 침대 곁을 떠나 두껍게 쳐진 커튼을 걷어낸다. 예쁜 손이 야무지게 커튼을 하나하나 걷어낼 수록, 오랜 시간 어둠에 적응되어 있던 눈을 더더욱 뜨기가 힘들어 진다. 겨우 겨우 눈을 뜨니, 햇빛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승호가 보인다. 예쁘다.


  "니가 무슨 드라큘라도 아니고. 이게 뭐냐?"  
  "음… 그냥 무드…를 위해서…"
  "어련하시겠어."


  진짜 흡혈귀가 되는 꿈을 꿨다고 하면 승호는 믿을까. 송곳니를 날카롭게 세우고 양승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쪽쪽 빨아먹는 흡혈귀가 되는 상상. 꿈이었나 상상이었나. 머리가 띵하다. 간밤에 흡혈귀가 와서 피를 잔뜩 빨아먹고 갔나? 머리에 피가 모자란 느낌이다.


  "으엑. 모기 물린 거 봐."
  "아, 흡혈귀…"
  "어? 흡혈귀?"
  "가 아니고 모기…."


  내 의미 없는 중얼거림을 듣던 승호가 기가 찬 듯 웃었다. 할배 웃음. 허헣허허허허허허허허. 멍하니 웃는 모습을 쳐다봤다. 예쁘다. 역시 예쁘다. 그러다 불시에 공격을 당했다. 야무진 손이 이번엔 내 맨 등을 걷어버릴 듯이 내리쳤다. 아프다. 역시 아프다.


  "정신 차리고 밥 먹어라."
  "으응…"
  "어허."


  솔직히 승호가 차려주는 밥은 맛이 없다. 자다 일어나서 먹으면 진짜 맛이 없다. 차라리 개밥을 먹겠다 싶을 정도로. 꾸역꾸역 개밥만도 못한 밥을 씹어 넘기며, 승호를 흘끔 본다. 예쁘다. 밥 먹는 모습도 예쁘다. 입술이 오물오물. 맛있게도 밥을 씹고 있다. 맛없는 밥도 먹어주고, 평소에 일어나지도 않는 아침시간에 일어나 줬으니 부탁 하나 정도는 흔쾌히 들어줄 것만 같다. 예쁘게 밥을 씹어 먹는 양승호는, 아마 마음도 넓을 거다. 넓어 보인다. 아니다, 넓다.


  "누드모델 한번만."
  "밥이나 먹어라."
  "옙."
  

  …어림도 없었다. 역시 넓다는 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예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