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동삼)양쌤

from 3 2012. 9. 20. 22:53

김동준x양승호


  "쌤. 양호쌤이랑 잤죠."


  어?


  "나랑도 해요."


  안 그럼 이거 전교에 뿌려버릴 거예요. 녀석이 내민 핸드폰 액정에는 커다란 남자 둘이 침대 위에 엉켜있는 사진이 떠 있었다. 이, 정병희 씨발라 먹을 새끼. 개새끼. 니가 내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리는 구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나간다. 그때 창문을 잠궈놓지 않았던가? 커튼도 다는 아니지만 쳐져 있었고. 가물가물. 한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머리가 아프다. 평소에 잘 겪지 않는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골이 울린다.


  "저 그때 옆 침대에 있었거든요."


  정병희 씨발라 먹을 새끼. 간신히 아물었던 항문이 다시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맞아서 퉁퉁 부은 뺨은 이틀 만에 가라앉았지만, 항문은 꼬박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아물었다. 찢어져서 피가 얼마나 났던지. 생리대라도 차고 있으라고 양호실 서랍에서 생리대를 꺼내 주던 정병희의 모습이 얼마나 얄미워 보였는지 모른다. 이 새끼는 이런 상황에서도 깐죽거리나 싶었다. 정병희가 친히 내 속옷에다가 생리대를 붙여주었지만 내가 한사코 거절했다. 사실 거절이라기보다는 거의 욕이었다. 그 날 이후로 정병희와는 눈도 안 마주쳤다. 더러워진 체육복을 그 새끼가 빨아다가, 내 책상 위에 둔 게 다였다. 끝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저, 쌤 생각하면서 나쁜 짓 많이 했어요."


  여기서 '나쁜 짓'이라는 것. 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왜 자꾸 이런 새끼들이 꼬이는 거지. 어디서부턴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그 시발점에는, 정병희가 있을 게 틀림 없다. 나쁜 새끼. 속으로 한참 정병희의 욕을 지껄이고 나서야 앞에 서 있던 남학생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김동준. 1학년 7반 반장.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고, 들었던 거 같다. 공부는 잘 몰라도 아무튼 운동은 잘 했다. 축구부 차기 주장이라는 소리도 있으니까. 본인은 그다지 축구를 오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보이지만…. 


  "양승호 선생님. 잘 들으세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에요."


  예쁘장한 외모와는 다르게, 부딪쳐오는 시선이 다부지다. 협박. 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쿡쿡 쳐박힌다. 끈질기게 맞춰오는 시선에 절로 한숨이 입밖으로 흘렀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 사진에는 내 얼굴이 꽤 선명하게 나와있었고, 그건 정병희도 마찬가지였다. 정병희가 학교를 관두게 된다면 나야 좋겠지만-. 문제는 나도 잘릴 가능성이 아주, 아주, 크다는 거다.


  "…한 번 하고 나면 사진 다 지우는 거야. 알았어?"
  "좀 아까운데…."
  "아깝든 말든 그건 니 사정이고. 지워."


  녀석은 생각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픽 웃었다. 생각보다 쉽네. 라고 중얼거린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녀석은 활짝 웃으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붙잡는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놀랐다. 아니 무슨 남의 어깨 아작낼 일 있나. 왜 이렇게 힘을 줘. 불쾌함에 얼굴을 찡그리자, 어깨를 잡았던 손에 힘을 푼다. 그리고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마치고 기다릴게요, 선생님."


  라고 말한다. 왠지 그 말이 '도망가면 죽어요, 선생님.'처럼 들려서 기분이 더러웠다. 난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서둘러 교무실로 돌아왔다. 어떻게 사진만 지우는 방법은 없을까….














  "진짜로, 양호 선생님이랑 사귀는 거에요?"


  이 새끼, 남자가 너무 눈물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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