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병삼)양쌤

from 3 2012. 9. 20. 22:48

정병희x양승호


  양쌤.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적당히 딱딱한 침대.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약간의 먼지 냄새가 나는 이불. 제대로 닫히지도 않는 얇은 커튼. 어째서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나는 항상, 단잠을 자게 되는지 모르겠다. 점심시간이 끝난 건지, 멀리서 흐릿하게 들리던 왁자한 소리가 더 이상은 들리지 않았다. 오늘 5교시 수업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기 위해 이불을 조금 더 위로 끌어올렸다. 킁킁. 먼지 냄새. 건조한 냄새가 난다. 가끔 양호 선생님에게서 나는, 미약한 소독약 냄새와 함께. 


  "일어나셔야 돼요."


  …알아, 안다고. 성질을 확 내버리면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릴까 걱정이 돼서 꾹꾹 눌러 참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요일 5교시엔 수업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일어날 이유가 없지. 양호실까지 교장선생님이 순찰하러 오시는 것도 아니고. 오늘 특별한 일도 없었고. 문제라면 양호선생님이었다. 내가 여기서 비비적대는 걸 얼마나 귀찮아하는지. 눈에 빤히 보인다. 뇌물이랍시고 일부러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온 적이 있었는데, 보기 좋게 거절당해서 멜로나를 썅썅바처럼 양손에 들고 먹은 적이 있었다. 정말로 나를 싫어하나 저 인간. 나는, 딱히 싫지 않은데.


  "양쌤."
  "…알아요."
  "네?"
  "5교시 시작한 거 안다니까."


  나를 싫어하는 주제에 목소리는 다정한, 양호 선생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순간 내가 다시 잠에 빠져 들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침묵. 어중간하고 불편한 양호실과 꽤 어울리는 침묵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래봤자 잡생각이긴 하지만. 그렇게 가볍지 않은 침묵을 즐기며,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상태로 누워 있는데, 배 위에 묵직한 뭔가가 느껴졌다. 눈을 떠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렇게 평범한 상황이 아닌데도 머리는 잠에서 깨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100분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뜰까 말까, 갈팡질팡 하는 중에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퇴근해야 해요."
  "아직 5교시…"
  "학교 일과 다 끝났어요, 선생님."


  결국 눈을 떴다. 퇴근은 해야 하니까. 내가 그렇게 오래 잤구나,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쉽게 되지 않았다. 정 선생님이 내 배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어깨가 붙잡혀서 다시 침대에 몸을 누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멍하게 비워진다. 무슨 상황일까. 난 퇴근을 해야 하고, 정선생님도 퇴근을 해야 하는데. 아직 약간 흐릿한 시야에 양호 선생님이 가운을 벗는 게 보인다. 언제나 생각했던 건데, 가운이 참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양호 선생님에게 잘 어울리는 가운은, 양호 선생님의 손에 의해 양호실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퇴근…"
  "퇴근 하고 싶어요?"


  양호 선생님의 말끔한 얼굴이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고 다정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정답이 뻔한 질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튼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의 미소가 더 짙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말라서 갈라져버린 입술을 혀로 한 번 훑더니,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양쌤 덕분에 내가 퇴근을 제 시간에 못했거든요.


  정병희 선생님이 날 보고 양쌤이라고 불렀었나?


  "…정 선생님?"
  "보상을 좀 받았으면 좋겠거든요, 저는."
  

  …언젠가,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꿈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침대에 누워서 누군가의 애무를 받는 나.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애무 해주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고. 왜 그런 상상을 했을까. 아니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예지몽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 선생님의 까슬한 혀가 가슴을 훑고, 배를 지나 다리 사이로 점점 내려간다. 나는 꿈에서처럼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지 않는다. 주먹을 꽉 쥐고 이 시간이 지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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