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12 (퍽커트) 바이러스

from 2.5 2012. 9. 20. 23:18

  1.


  호모섹슈얼도 호모포비아처럼, 대화를 통해 감염되는 일종의 바이러스가 이닐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불쑥. 어느 평화로운 아침,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보균자에 관한 뉴스가 TV에 나오듯이. 아주 불쑥. 그리고 또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런 거라면 난 이미 감염된 게 아닐까, 하고. 이미 감연된 게 아니라면 몸 속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중이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암도 건강한 몸에서 훨씬 빠르게 자란다며? 바이러스도 아마 그렇겠지.


  암 덩어리 같은 거잖아. 호모섹슈얼이나 호모포비아나.

  그리고 눈 앞의 소년을 바라본다.


  "…퍽? 너 괜찮아?"


  나는 호모포비아도 아니고, 호모섹슈얼도 물론 아니다. 정상 세포인 거지. 물론 학교 내에선 암 같은 존재지만. 뭐, 병명을 붙이자면 쿨한 암. 그런 거. 아무튼 나도 암 덩어리고, 너도 암 덩어리라는 거지. 둘 다 선구적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보이네. 의외로 공통점이 많을 지도 몰라. 나는 소년의 눈을 바라본다. 투명한, 그리고 고귀한 유리알 같은.  


  씨발. 그새 바이러스가 더 퍼졌나.


  "너."
  "너 괜찮은 거 맞지?"
  "아니, 우리."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듯, 커트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는 그 사랑스러운 미간에 키스해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손이 근질근질. 입술이 근질근질.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난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그것도 완전히. 그리고 생각한다. 백신은 바이러스를 연구해야 생기는 거지. 그래, 난 바이러스 감염자고, 넌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최초 유포자? 뭐 그런 거니까.

  연구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데이트 할래?"


  소년, 아니 커트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리고, 난 그의 입술에 키스했고, 그리고,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난 그의 웃음소리를 모두 먹어치울 듯이, 그렇게 키스했다.



2.


  가끔 그런 인간들이 있다. 동성애를 단순히 병으로 취급하는 인간들. 나을 수 있다고 믿는 인간들. '정상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여기는 인간들.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나는 그들을 아주 많이 보았고, 그들은 여전히 내 주변에 존재한다. 널리고 깔렸다. 꽃에도, 더러운 것에도 벌레가 꼬이기 마련이다. 그런 거다. 그 비슷한 거다.

  하지만 병도 아니고, 단순한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데이트 할래?"


  귀 안에, 혹은 뇌 속에 벌레가 기어들어온 건가 싶었다. 소년은 얼마 전, 아니 5초 전까지도 그들, 그 벌레 중 하나였다. 불쑥. 자켓 주머니에서 귀뚜라미가 톡 튀어나온 기분이었다. 황당하고, 놀랍고, 딱히 손쓸 방도가 없는. 그런 기분. 얼굴 근육이 당겨왔고, 난 웃는 대신 인상을 썼으며ㅡ, 키스 당했다. 그의 키스는 꽤 괜찮았다. 좋았다. 그것 깨달은 순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웃음이 터져나왔다.


  꽤 괜찮은 데이트 신청이잖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소년들은 그날로부터 열흘동안 두 번의 데이트를 가졌다. 소년 1, 노아 퍽커맨은 그 데이트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커트가 데이트 때마다 짜증을 내다가 결국 화를 내며 집으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번 째 데이트에서 그 화가난 커트를 붙잡기 위해 퍽은 그의 손을 낚아챘는데, 아주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러나 커트의 손은 부드러운만큼 매끈하게 퍽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데이트의 내용이 별 것 없기도 했거니와, 그 손의 감촉 덕분에 퍽은 두 번의 데이트 중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깡그리 잊어버렸다.

  퍽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제법 간지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전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소년2, 커트 험멜 또한 데이트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영화를 본 것 같은데, 퍽은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영화에도. 커트에게도. 커트는 의심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도 날 괴롭힌 앤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괴롭힘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자 겉잡을 수 없이 짜증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화를 내는 자신에게, 더더욱 화가 났다.

  커트는 데이트 내내 긴장해 있었다. 그가 데이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오늘 좀. 덥지 않아?"
  "그냥 그런데. 너 열이라도 있는 거 아냐?"


  커트는 바짝 붙어 앉아 제 이마에 다정스레 손바닥을 대보는 퍽과 약간 떨어져 앉고 싶었다. 오늘은 세번 째 데이트였고, 퍽은 커트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만나보는 게 좋겠어." 커트가 자꾸만 짜증을 내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하고 한 말 같았다. 그러나 커트는, 전혀 편하지 않았고, 덥고 짜증이 났다. 퍽은 이상하게 오늘따라 가까웠따. 커트는 더위와 추위에 강한 인간이었다. 패셔니스타는, 미를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게 많았으니까.

  TV에서는 퍽의 취향인 액션 영화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좀 떨어져 앉았으면 좋겠는데."
  "왜?"
  "어… 영화가 잘 안 보이네."


  퍽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TV를 쓱 돌아본 후 아주 약간 커트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자신은 이미 3번이나 본 영화였기 때문에, 소리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 게이 소년은 이 핫한 영화가 처음인 거 같으니까. 배려해줘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제법 재미를 느끼는 모양이라며, 퍽은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커트를 동정했다. 이 재밌는 걸 오늘 처음 보다니. 눈을 땡그랗게 뜨고 TV를 노려보는 커트를 보며, 퍽은 그의 손을 제 손으로 쥐어보았다.

  커트가 그대로 눈을 돌려 퍽을 쳐다봤다.


  "너 손이 진짜 부드럽다."


  커트는 퍽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목 뒤쪽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손을 살짝 빼며 얼른 대답했다. 마치 래퍼처럼 빠른 속도였다.


  "비결은, 어, 오리기름이야."


  퍽이 손을 다시 잡아왔다. 그는 "으음. 오리기름. 오리 좋지."라고 중얼거리며 커트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커트는 다시 손을 빼려다가, 민망한 헛기침을 하며 재빠르게 TV로 시선을 돌렸다. 영화 내용은 뭔지 전혀 모를 정도로 집중이 되지 않았지만, 퍽과 눈을 마주 보고 있는 것보단 덜 불편한 것 같아서 열심히 보는 '척' 했다. 퍽은 금세 손에 흥미를 잃고 커트의 목덜미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커트는 괜히 어깨를 움츠렸다.


  "영화 재밌지."
  "으응. 응. 재밌네."
  "난 네가 더 재밌는데." 라는 소리가 불쑥 나올 뻔 해서, 퍽은 아주 잠깐 동안 침묵했다. 그것이 커트를 더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커트는 바짝 긴장한 채로 다리를 오므리고, 허리를 세웠다. 그의 딱딱한 표정과 자세를 보던 퍽이 문득 그의 어깨를 잡아왔다. 커트는 놀란 눈으로 퍽을 바라보았고, 곧 퍽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가 되었다. 퍽이 자신의 양손으로 커트의 어깨를 꾹꾹 누르며 주물러댔다.


  "뭐. 스킨십이 서로를 더더욱 친하게 만들어 준다잖아."


  커트는 이상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퍽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퍽의 손아귀힘이 굉장히 좋아서, 커트는 끊임없이 끙끙대야 했다.


  "우리는 좀 친해져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아아!"


  커트가 비음섞인 비명을 질렀고, 퍽은 씨익 웃어보였다. 커트는 얼른 제 입을 막고 퍽의 눈치를 살폈다. "좀 더 편하게 있어도 되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퍽의 손에 의해 커트는 이제 완전히 소파에 엎드리게 되었다. 퍽은 커트의 엉덩이 위에 자리를 잡고 안마를 재개했다. 영화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고, 남자 주인공이 비장한 얼굴로 불이 난 건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콰광! 거대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폭발했고, 커트가 아픈 신음을 참지 못하고 내질렀다. 퍽의 손길은 너무나 투박하고 아팠지만, 확실히 시원했다.


  "참지 않아도 돼. 우리 뿐인데 뭐."


  퍽이 무덤덤하게 중얼거렸고, 커트는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퍽은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손 안에 커트의 어깨가 착착 감겼다. 커트는 손만큼 뒷덜미도 부드러웠고, 약간 살집이 있는 등과 옆구리 또한 다른 누구의 살보다 '쫀득'한 느낌이었다. 퍽의 손이 등으로 내려오자 커트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움찔 떨었는데, 퍽은 왠지 해서는 안되는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커트의 오동통한 엉덩이도 바짝 긴장해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커트?"
  "어, 으응?"


  커트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에 대해 온 뇌를 써서 고민하고 있었으므로, 퍽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퍽은 더더욱 힘 주어 커트의 등을 눌러댔다. 커트는 이를 악 물었다. 금방이라도 또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때 퍽의 손가락이 커트의 목덜미를 쓱 문댔다. 커트는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경기하듯 어깨를 움찔댔다. 다음으로 퍽의 입술이 커트의 목덜미에 닿았다. 그는 부드럽게 커트의 살을 씹고 조심스럽게 빨아들였다.


  "…뭐, 뭐야?"
  "키스마크."


4. 



  나는 사실 남자애가 끙끙대는 게 이렇게 귀엽거나, 혹은 섹시할 수 있다는 것에 순수하게 놀랐다. 바이러스…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커트 험멜' 그 자체에 어떤 함정 같은 게 숨어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침대 위에 반쯤 드러누운 커트의 티셔츠를 위로 끌어 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흥분한 것을 최대한 감추고 싶어서 입술을 앙다물고 코로만 숨을 쉬었다.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야하게 만지면, 그의 순소리는 경련하듯 잠깐 끊겼다가 조금 뒤 거센 소리를 내며 이어졌다. 커트는 입을 열면 민망한 신음이 튀어나올까봐 그 어떤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심지어 그만두란 소리 까지도.





  난 그저 재밌었다.





  바지를 벗겨내며 키스를 하자, 그의 입술은 어떠한 저항도 없이 스르륵 열렸다. 커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내 목에 팔을 둘러왔다. 지금껏 해본 키스 중 가장 서툰 키스였다. 나는 즐거워서, 일부러 얼굴을 자주 움직이며 그의 코를 뭉게거나 했따. 아래쪽은 전혀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그의 것은 벌써 딱딱해져 있었다. 긴 키스 끝에 입술이 떨어지고, 커트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는 이미 열이 올라 빨갛게 된 뺨을 제 손으로 꾹 누르며 눈길을 아래로 툭 떨구었다.





  오, 하느님.





  퓨즈가 톡 끊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깐, 잠깐만-, 아,"





  나는 거칠게 그의 속옷을 벗겼다. 그는 얼굴이 새빨게져선 어쩔 줄 몰라했다. 허공을 맴돌던 그의 손이 간신히 내 손목을 잡았다. 피부에 와닿는 그의 손바닥이 뜨거웠다. 맞닿은 내 피까지 들끓게 할 정도로. 나는 그것을 부드럽게 뿌리치고 그의 옷을 전부 바닥으로 밀어버렸다. 커트가 끙끙 앓아댔다. 갑자기 벗은 몸이 되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내 베개를 끌어와 그 밑에 제 머리를 숨겼다. 이건 또, 어떤 종류의 밀당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직구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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