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1 스카썬

from 2.5 2012. 9. 20. 22:58

오스카x썬





1-1. 대화

"너 나 비웃냐? 왜 웃어!"

"귀여워서."

"뭐, 뭐!? 귀여워? 귀엽다고?"

"어. 나이 먹고 주책이야, 진짜."

"야! 이~렇게 멋있고! 남자답고! 복근도 있는데! 어? 내가 한 번 까줘? 지는 비리비리 해가지고…"

"발끈 하는 거 보니까 더 귀엽네."

"너! …내가 이래도 귀엽냐? 이래도?"

"뭐해? 씨발, 비켜."

"싫어. 귀엽다는 말 취소할 때까지 안 비켜."

"비키라고. 무거워."

"말해봐. 아직도 귀여워? 귀엽기만 해?"

"아! 비키라고! 안 들려? 늙어서 귀도 어두워졌어? 이래봤자 하나도 안 떨리니까…!"

"오~ 어~ 너 지금 떨리나 보다?"

"닥쳐. 말이 헛나왔어."

"헛나온 거 치고 얼굴 색이 아까랑 좀 많이 다른데. 와~ 지금 입술 깨물고…어? 노려보는 것 좀 봐라? 나 유혹해?"

"이, 미친…!"

"이거 봐, 찔려서 말도 못하는 것 좀…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지금 엄청 빨개."

"형보고 너라고 하는 거 아니랬지. 그리고 너도 만만치 않거든?"

"암튼 빨리 비켜. 더한 거 당하기 전에."

"야! 해도 내가 해!"

"뭐? 얘기가 왜 그 쪽으로 튀어?"

"귀엽다는 말 취소하기 전엔 안 비킨댔지?"

"그런다고 누가 취소할 거 같아?"



참내. 너 취소 안할 거 다 알아요. 이 츤데레 자식아.





1-2. 함께 귀가하기.



  "꺼져."
  "너 그만 좀 튕겨! 그렇게 튕긴다고 튕겨져 나갈 사람으로 보이냐. 내가?"


  또 시작이다. 알바 옮긴 걸 어떻게 알아냈는지 귀신같이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른다. 나이도 벌써 무려 서른여섯인데 이 영감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다. 해도 졌는데 선글라스 챙겨 쓴 거 하며, 추운 날씨에 멋 부리느라 한껏 얇게 입고 온 꼬락서니가 아직 덜 지쳐도 한참 덜 지쳤다. 이 사람은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도망 다니는지 모르는 걸까. 알고도 쫓아다니는 걸까.


  "어. 그러니까 제발 좀 이제 튕겨져 나가."
  "안 해. 못 해!"
  "못 해?"
  "그래, 못해!"
  "그럼 못하고 있어. 난 바빠서 이만."
  "야!"


  뒤돌아 가다가, "야!" 소리에 잠깐 멈춰주는 센스. 그리고 "너 거기 안 서?" 했을 땐 살짝 뒤돌아주는 센스. 누구한테 배웠냐고? 글쎄. 어쨌든 이 인간한테 잘 먹히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고개는 옆으로 건방지게 살짝 꺾어주고, 미간은 약간 접어주고, 눈에는 힘을 빡. 역시나 이 영감탱이, 씩씩거리며 마주 노려본다. 보면 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난 그 쪽 반응 패턴을 줄줄 외고 딱딱 알아맞히는데, 저쪽에선 여전히 내 패턴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관심의 차이라기 보단, 저쪽 학습능력이 평균치 이하…라는 게 더 정답에 가까운 듯싶다.


  "너, 너…!"
  "뭐."


  할 말이 떨어진 듯, 최우영이 잠시 주춤한다. 이럴 땐, "할 말 없으면 간다"를 속공으로 날려주어야 한다. 시크하게 한 마디 툭 던지니, 역시나. 가려는 내 손목을 붙잡는다. 나는 "놔. 안 놔?" 하고 눈빛 광선을 좀 쏴준 후, 팔목은 대충 흔들다 그대로 둔다. 왜? 뺀다고 그대로 놔줄 인간도 아니고, 잡고 있는 쪽이 난 더 좋으니까. 내 속을 알면 당장 놓을 인간이긴 하지만.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손목이 잡히고 난 후, 한숨을 쉬며, 귀찮다는 듯, 할 수 없다는 듯 말하는 게 포인트다. 단순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최우영은 99%는 넘어오게 되어있다. 나보다 바쁜 일이 없을 때이긴 하지만. 최우영은 내가 미끼를 던져주는데도 불구하고 또 잠시 우물쭈물 거렸다. 하, 역시나. 핸드폰 진동이 미친 듯이 울리는 걸 보니 '나보다 바쁜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 여자다. 이래서 내가 빈정이 상한다고. 계약하자고 무릎 꿇고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너…! 잠깐 기다려."


  핸드폰을 찾아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걸 보고, 손목을 확 빼 버렸다. 누가 기다려준데? 정말로 화가 나서 그를 무시한 채로 뒤돌아 성큼성큼 걸었다. 버스 정류장은 반대 방향인데. 택시 타면 또 뭐 어떠랴 싶어서. 최우영은 전화로 알랑방구를 뀌면서도 날 열심히 뒤쫓아 온다. 두 마리 토끼 다 놓치고 싶진 않은 모양이지. 늙어서 욕심만 많아가지고.


  "야…! 너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댁이랑 다르 게 난 다리가 좀 길거든."
  "이게 이씨! 너 내 다리 짧은 거 아니다? 동양인의 기준 체형이라니까, 내가?"
  "아, 됐고. 통화나 마저 하고 윤슬인가 다슬긴가나 만나러 가."


  최우영은, 그제 서야 전화기를 품에 다시 넣고 슬쩍 웃는다. "질투했냐?" 하는데, 정말 질투했다고 하면 또 바로 딱딱하게 굳을 얼굴이라, 차마 솔직하게 질투했다고 말도 못한다. 니가 내 속을 어떻게 아냐. 이 여자만 밝히는 아저씨야.


  "너 집에 가는 길이었지? 내가 데려다줄게."
  "…그 여잔 어쩌고."
  "아. 슬이? 괜찮아. 어차피 오늘 약속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 아니었음 보러갈 거였잖아."
  "에이, 그거야 그렇지만. 암튼 내가 데려다 준다니까? 타."
  "됐어. 택시가 더 편해."
  "아 진짜. 넌 왜 한 번도 고분고분 하질 않냐, 애가! 타라면 타!"


  조금 버티다가, 손목을 잡고 끌고 가면 또 못이기는 척 차에 탄다. 차 안이 따뜻하긴 하네. 새침하니 앉아 있는데 문득 눈이 마주쳤다. 저 쪽이 웃어서, 나도 따라서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웃지 마. 정 들어."
  "너 같은 인간에게도 정이란 게 있어? 냉혈인간 한태선한테?"
  "…나 내릴래. 차 세워."
  "어허. 달리는 차에서 내리면 다쳐요."


  차 문고리를 잡고 있던 내 손 위로, 최우영의 손이 겹쳐졌다. 나도 모르게, 그대로 굳어버렸다. 티 안내려고 몰래몰래 연습까지 하는데. 예상치 못했던 패턴이라 곧바로 반응이 나오지가 않는다. 또 최우영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제 서야 손을 빼낼 수 있었다. 최우영도 약간 멍한 표정. 아…진짜. 귀엽고 난리야. 다 늙은 아저씨가. 최우영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운전을 하던 매니저를 보고 빨리 못가냐고 닦달이다. 

  아, 이런 미친. 저런 거까지 귀엽다니.





1-3. 함께 술 마시기



  "앉아. 술이나 한 잔 하자."
  "됐어."
  "야. 이럴 때 또 안 좋은 감정 풀고 그러는 거야. 앉아."


  태선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곧 한숨을 쉬며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우영이 그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잔에 와인을 적당량 따라 태선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같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바람에 시작한 지 5분도 안된 술자리를 깰 뻔했다.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좋아하시네. 그 가운은 또 뭔데? 하룻밤 묵는 손님답게, 태선은 불편한 외출복 차림 그대로였다. 그에 반해 우영은 어딘지 취향에 의심이 가는 가운 차림. 태선의 눈에는 그게 거슬린 모양이다. 하지만 간만에 둘 사이에 좋은 분위기라, 우영은 쉽게 욱하지 않았다.


  "가운? 왜. 너도 하나 줘? 입을래? 여자 거긴 하지만…."
  "미친."
  "왜? 너 날씬해서 괜찮을 거 같은데."


  태선이 또 5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나려고 하는 걸, 우영이 다시 앉혔다. 농담이야. 일단 건배. 쨍. 태선은 어딘지 신난 우영을 보며 화가 나는 것도 참고 와인을 한 모금 목 뒤로 넘겼다. 사실 와인 같은 거 별론데. 맛있게 생겨가지곤 맛있지도 않고. 그런 소릴 했다간, 우영에게서 '아직도 어린애'라느니, '그러고도 남자냐' 소릴 들을 거 같아 또 꾹 참았다. 저보다 정신 연령이 어린 사람에게 어린에 취급 받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치기가 제대로 발동해서, 부어주는 대로 마셨더니 취기가 잔뜩 올랐다. 태선은 언제나 가볍게 한잔정도 하는 사람이었지, 절대로 '부어라 마셔라' 하며 먹는 타입이 아니었다. 언제나 흥이 오르는 적정선까지만. 그런데 이놈의 뭐시기 20년 된 와인은 몇 잔이 적정선인지도 모르겠고, 오스카 따위에게 지기도 싫었다. 태선은 눈꺼풀이 차츰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와인을 따라주는 우영의 손을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맛없다고 했던 그 와인을 이제 꿀물처럼 들이 키고 있었다. 잔속의 와인도 뱅글뱅글 돌고, 눈앞의 최우영도 뱅글뱅글 돌았다.


  "야. 너 이제 그만 마셔야겠다. 얼굴이 빨갛네."


  어쩐지 즐겁게 들뜬 우영의 목소리에, 태선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속으로 '난 괜찮다' 하고 열 번 정도 주문을 외우고 나서 눈을 부릅떴다. 이제야 최우영의 고 얄미운 얼굴이 좀 선명하게 보인다. 역시나, 빙글빙글 웃고 있다.


  "더 마시 쑤 있거든?"
  "에게. 혀 꼬였는데."
  "니 귀가 꼬연나부지?"
  "하여간. 취해서도 싸가지는."


  우영은 어린애 보듯이 태선을 보고 웃으며, 태선의 잔에 와인 아주 약간만 더 따라 주었다. "이것만 먹고 그만 마셔"란 말이 떨어지자마자 태선의 얼굴에 불만이 잔뜩 서린다. 귀엽다. 우영은 태선의 신선한 얼굴을 보며, 동생이 이제야 동생답다고 속으로 기뻐했다. 새빨간 입술이 와인을 마시고 오물오물 대더니, 끝내 아쉬운 탄성을 내뱉었다. 태선은 우영의 잔에 찰랑찰랑 거리는 와인을 빤히 쳐다봤다. 입술이 또 오물오물. 먹고 싶은 모양이다. 어지간히 맛있었나 보다. 장난기가 발동한 우영이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입 안에서 살살 굴리다 꼴깍 소리가 날 정도로 맛있게 삼켰다. 태선의 눈이 멍하니 풀린 채로 그 행동을 쫓는다. 우영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와인을 한모금 더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응'하며 태선 쪽으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우영도 흥건하게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다. 그리고 태선은, 더더욱 제정신이 아니었다. 태선은 순식간에 우영의 입술과 함께 그 안의 와인을 마셔버렸다. 그러고도 한참을, 태선은 우영의 입안을 헤집는다. 구석구석 와인 맛을 보는 것도 모자라 혀까지 야무지게 쪽쪽 빨아낸다.



'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08.26 (블레인커트)  (0) 2012.09.20
2011.08.26 (샘커트퀸)  (0) 2012.09.20
2011.08.21 (샘커트)트로피  (0) 2012.09.20
2011.08.18 (샘커트블레인)  (0) 2012.09.20
2011.08.15 (샘커트) 락커룸  (0) 201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