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SION A.
설레는 맘으로 샘과의 데이트 장소에 온 퀸은 그대로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데이트고, 자신에게 이별을 고할 샘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퀸은 도무지 눈 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오하이오주를 통틀어 유일하게 커밍아웃한 게이 소년과, 샘이 손을 꼭 맞잡고 데이트 약속 장소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퀸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접근했다.
"샘…?"
"어, 왔어?"
"오늘 더블 데이트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퀸이 난감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커트가 머쓱한 표정으로 웃으며 퀸을 보고 있었다. 퀸은 그와 눈이 마주치고 잠깐동안 설렜다. 웬일로 커트는 보통의 남자애처럼 꾸며 입고 있었으며, 퀸은 평소 외면하고 있던 그의 미모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뭐 물론 작고 귀여운 남자애는 퀸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지만! 사람은 가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블레인이 지독한 독감에 걸렸데."
"어, 괜히 끼어들게 된 것 같아서, 미안."
"그런데, 음, 꼭 손을 잡고 있어야 할 이유라도…?"
"아, 그래! 맞아. 오늘은 내가 커트의 남자친구가 되어주기로 했어."
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커트는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붙잡은 손을 놓지 않는 걸로 보아,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퀸은 머리에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손 부채질을 하며, 퀸이 차분하게 되물었다.
"그럼, 나는?"
"넌 물론 내 여자친구지."
샘이 바보같이 웃으며 퀸의 손을 잡아왔다. 퀸이 황당항 표정으로 웃자, 샘은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오늘만 참아줘'라고 속삭였다. 언제나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여기는 퀸이었지만, 샘의 애교에는 멍청하게 녹아버렸다. 퀸은 자신의 빨개진 귀를 가리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커트는 묘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다가 퀸과 눈이 마주칠 것 같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뭐 할거야, 오늘?"
"영화 예매해놨어."
커트의 손을 놓은 샘이 쨔안하고 주머니에서 영화티켓 4장을 꺼내보였다. 세 사람은 곧장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커트는 퀸과 샘이 밀착해서 걷는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람. 블레인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확인해도 새로 온 메세지나 부재중 전화는 하나도 없었다. 앞에 보이는 퀸과 샘의 뒷 모습에 커트는 마음이 거북해졌다. 지금 그의 모습은 예쁜 커플 사이에 낀 눈치 없는 게이 친구일 뿐이었다.
영화만 보고 집으로 가야지.
그는 그렇게 꼭꼭 다짐했다.
**
영화는 공포 스릴러였다. 샘이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예매했는지 퀸과 커트 두 사람 모두 눈치챘지만, 그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커트는 팝콘을 샀다. 평소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거라도 안고 있어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에겐 콜라를 하나씩 안겨줬다. 계속 눈치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으니까. 말하자면 뇌물같은 것이었다.
자리배치는 자연스럽게 샘이 가운데가 되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샘은 커트에게 팝콘을 한 웅큼 받아 퀸에게 주었고, 저는 팝콘 박스에서 바로 팝콘을 꺼내 먹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10분 남짓. 퀸이 소리를 지르며 샘의 품에 안겼다. 그게 신호탄이었다. 두 커플께선 끈적하게 붙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커트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포영화에 반쯤 졸며 팝콘을 씹었다.
그때 였다. 팝콘 박스 안에서 가끔 부딪치던 샘의 손이 다른 곳에 닿기 시작한 것은. 커트는 잠이 순식간에 달아나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가 샘을 흘깃 보았을 때, 샘은 아주 태연한 얼굴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팝콘 박스가 내 품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팝콘을 집으려다가 손이 미끄러졌겠지. 커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쪽이 맘이 편했다. 커트는 다리 사이에 뒀던 팝콘 박스를 샘이 앉아 있는 쪽으로 옮겨 안았다.
"…윽."
"아. 미안."
그러나 커트의 다리 사이로 샘의 손이 들어왔고, 예상치 못한 공격에 커트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샘은 웃고 있었다. 커트가 그의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할 새도 없이, 커트의 바지에 샘의 콜라가 와륵 쏟아졌다. 순식간에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커트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샘도 따라 일어섰다. 그는 호들갑을 떨며 커트를 상영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커트는 몹시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퀸은 질투가 심해."
"뭐라구?"
"퀸은 질투가 심한 여자라고."
커트는 황당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거랑 빌어먹을 콜라를 일부러 쏟은 이유가 무슨 관계람? 샘은 커트를 화장실 안으로 거칠게 밀어넣었고, 그리고, 키스했다. 커트는 이 모든 상황에 짜증이 났다. 열이 받았다. 그리고 그와 관계없이 샘의 키스에 몸에 열이 올랐고, 그것 또한 화가 났다. 커트는 샘의 가슴을 주먹으로 몇 번이나 세게 때렸다. 한참을 버티던 샘은 입술을 떼고는 끙끙대며 커트의 어깨에 기댔다.
"내가 지금 얼마나 기분 나쁜 지 알아? 속옷까지 다 젖었어!"
"그럼 벗으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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