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갤 전력

from 2.5/메이즈러너 2015. 5. 24. 00:25

민갤 전력 60: 여름

23:30-00:25

 

 

생각을 해보면. 아니 딱히 생각할 것도 없이 민호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였다. 어울리는 친구들도 달랐고, 가입한 클럽도 달랐고, 겹치는 수업도 얼마 없었다. 그러나 복도를 지나가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창을 통해 운동장을 쳐다봤을 때, 파트너도 없이 갔던 프롬 파티에서, 민호를 의식했었다. 적어도 나는, 그애를 꽤 의식하면서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취향이었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겪었던 몇 번의 애인들은 민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민호와 우연하게 마주친 것은 어느 여름의 오후였다.

 

? ! …….”

 

나는 소리 높여 그를 반갑게 부르다가, 입을 합 다물어버렸다. 우리는 인사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 소리에 이미 민호를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 자리에 굳어진 듯 서 있었다. 그는 조깅을 하는 중이었는지, 하얀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고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을린 피부. 떡 벌어진 어깨. 젖은 티셔츠. 그는 눈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햇빛이 너무 강렬한 탓이다. 아니, 내 탓인가?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갤리?”

 

내 이름 알고 있었구나. 나는 갑작스레 밀려오는 긴장감에 입술을 말아 물었다. 제법 넓은 길이었는데, 사람이 하나도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딘가의 영화 촬영 세트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갑자기 느껴지는 현실과의 분리감. 이질감. 민호의 존재는 그런 것이었나. 그가 느린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약간 주춤했다. 뭐라고 할 말도 없는데. 어째서 부른 걸까.

 

다른 도시로 갔다고 들었는데.”

 

그런 소식까지 알고 있었단 말이야? 나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잠시 고향에 내려온 참이었다. 쉰 지는 한 달 정도 되었나. 사실 아직까지 이 동네에 사는지는 몰랐는데. 민호는 반가운 얼굴로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민호의 손은 뜨겁고 축축했으며, 크고 단단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뒷목에 내리쬐는 햇볕이 뜨거웠다. 왼쪽 손에 들린 봉투에는 조금 전에 산 생선과 우유, 신선한 야채 따위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

? , 어어……. 그래, 좋지. 좋아.”

나 저기서 빵집하거든.”

 

민호는 자연스레 내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었다. 그리고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다시 내게 건네주었다. 빵집 하는구나. 고등학교 때, 민호의 부모님이 어느 귀퉁이에서 빵집을 꽤 크게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거 같다. 빵집이라. 빵을 만드는 민호라……. 나는 핸드폰을 잡고 잠시 멍해졌다. 민호는 내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내 이름도 모르는 건 아니지?”

아니, 아니야. 설마…….”

 

나는 얼른 민호라고 찍은 후에 그의 번호를 저장했다. 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그는 어깨에 대고 자신의 이마를 슥슥 문댔다. 기울어진 고개와, 슬쩍 웃고 있는 눈 꼬리 같은 것이……. 나를 아주 약간 떨리게 만들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목이 마르다. 정수리가 뜨거웠다.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땀에 많이 젖어서. 다음에 꼭 같이 식사하자.”

그래.”

 

민호는 손을 흔들고 가볍게 떠나가 버렸다. 나는 안녕.”이라고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쟤를 그렇게나 좋아했었나? 뒷목이 뜨끈뜨끈했다. 나는 목을 문지르며 다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후부터 저녁까지, 저녁 내내 민호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 시간 괜찮아?]

 

민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바로 며칠 후였다. 나는,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동안 민호에 대해서 약간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면서 민호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다니.’하고 감격했다. 나는 그에게 곧장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사심이 들어가면 고민이 많아지는 법이었다. 사심? 사심이라고? 나는 최대한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바쁜가? 확인하면 전화해.]

 

민호에게서 두 번째 문자가 왔다. 전화를 하라니. 나는 데이트 신청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들떴다. 문자 다음에 전화. ‘마치 손잡은 다음에 포옹처럼 아주 당연하면서도 단계적이지 않은가. 나는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장 통화버튼을 눌렀다. 누르면서 후회했다. 사실 그에게 크게 할 말도 없는데. 민호는 정확히 2초 만에 전화를 받았다. 나는 하마터면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갤리?”

? 어어. 민호. 연락했더라.

-“시간 있으면 오늘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문자-통화 다음에 바로 저녁식사라니. . 하긴 그 전에 손도 잡았네. -비록 악수였지만.- 나는 약간의 패닉을 느끼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민호는 꽤 참을성 있게 내 대답을 기다렸다. 얘 되게 다정한 편인가 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요즘 나이가 들었는지 나는 사소한 것에도 쉽게 감동을 느꼈다. 나는 코를 조금 훌쩍거리며 민호에게 좋아.”라고 대답했다. ‘좋아.’라니 얼마나 쉽고 좋은 말이란 말인가.

 

-“감기 걸렸어? 몸 안 좋으면 다음에 만나고.”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만나자.”

 

나는 또 거세게 감동을 받아서 더 크게 코를 훌쩍거리고 말았다. ……. 민호가 고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만났던 곳에서 보자.”

그래. 좋아.”

 

나는 이번에도 안녕.”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모든 순서가 뒤죽박죽 되어있다고 느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온 민호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었다. 그는 감기에 좋은 차라고 웅얼거리며 내게 그것을 안겨주었다. 나는 쑥스러워 자꾸만 몸이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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