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그웬과의 데이트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절대로 예민한 성격은 아니었고, 사람을 괴롭히는 일도 없었지만, 딱 한 가지 나를 곤란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바로 한 달에 한 번, 그녀가 마법에 걸리는 날 말이다. 그웬이 그렇다고 해서, ‘그날이라고 해서, 원래 없던 예민한 기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만 디저트를 너무 많이, 또 너무 많은 종류를 먹는다는 것이 문제일까. 그웬은 새빨간 입술을 하고서, 얼음을 씹으면서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피터, 얼음을 씹어 먹는다는 건 성욕을 억눌러서 그런 거래.”

 

 

그래, 그날은 어쩐지 그웬이 여기저기 신경 쓴 티가 났다. 그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할 뿐이었다. 평소보다 진한 향수 냄새가, 그리고 평소보다 단 것을 찾는 횟수가 많다는 것이, 그녀가 그날이라는 신호였지만, 나는 그냥 모른 척 하고 싶었다. 그웬이 눈을 깔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허무하다는 듯이. 그리고 덧붙인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피터. 넌 너무 어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만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영영 만나지 않게 되었다. 아 물론 데이트로서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좋은 친구다. , 아니 아주 애매한 포지션이긴 하지만. 나는 그녀와 만날 때에도, 그리고 헤어지고 난 후에도, 단한번도 얼음을 씹어서 먹은 적이 없었다. 헤어진 후에는 얼음만 봐도 치가 떨릴 때가 있었다.

 

 

뉴욕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거의 일주일정도나 말이다. 한시도 조용하지 않은 도시가 어떻게 일주일이나 조용할 수가 있지? 처음엔 좀 불안했지만, 나는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즐기기로 했다. 18살 이후로는 방학을 즐겨본 일도 없으니, 방학이라고 치면 문제될 것도 없었다. ……. 문제라면 다른 곳에 있었지만.

 

사흘 째 되는 날 아침, 나는 아주 오랜만에 자위를 했다. ‘자위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아주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아침부터. 말이다. 창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햇빛이 어찌나 눈이 부시던지. 그 단한번의 자위는 그 간의 오욕을 씻기라도 하는 듯이 내 성욕에 불을 지폈다. 나는 거의 하루에 세 번, 아니 네 번 정도. 자위를 했다. 운동량이 문제일까? 싶어서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밤이면 찾아오는 외로움과 애달픔은 막을 수가 없었다.

 

 

?”

 

 

나는 해리를 만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하나의 사건이 터진 후에, , 아니스파이더맨이 사건이 터지길 바란다니 안될 말이지. 어쨌거나 그는 조금 위험했다. 나는 그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리고 그의 연락은 조금씩 뜸해졌으며, 덜컥 오늘이 찾아온 것이다. , 그러니까. 그가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문자라도 넣을 것을 후회했지만, 어쨌든 일은 일어나고 난 후였다.

 

 

하하, . 안녕. ‘친구’.”

 

 

나는 애써 친구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지만 해리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숙모는 이미 출근하고 없는 시간이었다. 나도 곧 나갈 참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문 앞에서 맞닥뜨렸다. 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가슴을 밀고 집으로 들어왔다. 세상에. 가슴 같은 덴 만지지 말라구. 나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해리, 미안하지만, 나가는 중이었거든.”

하도 연락이 안돼서 죽었는지 확인하러 왔어. 살아있었네.”

……. 연락 안한 건 미안. 사정이 좀 있어서…….”

무슨 사정인데?”

……. 그게, , , 손가락이 좀 아파서.”

아하…….”

 

 

해리는 소파에 앉아 내 전신을 훑어보았다. 햇빛을 받은 파란색 눈동자에 심장이 덜걱 내려앉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등 뒤로 숨겼다. 세상에,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어이없는 거짓말이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집 안을 살펴보았다. 이 집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인간 중에, 가장 이질적인 존재가 해리 오스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엔 머리를 하느라 얼마의 시간을 썼을까. 나는 대충 구겨 신은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 그 뒤는 생각 하지 않기로 했다.

 

 

손님이 왔는데 차도 한잔 안주는 거야?”

나가는 길이었다니까.”

손가락이 부러졌는데 집에서 요양은 안하고?”

부러진 건 아니었어…….”

 

 

나는 입을 다물고 부엌으로 갔다. 마침 커피도 떨어지고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쯤 숙모가 커피를 사다놓으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냉장고를 열었다. 우유와 생수가 보인다.

 

 

해리? 우유라도 먹을래?”

……그냥 얼음물로 갖다 줘.”

 

 

. 그래. 좋아. 나는 우유 한잔과 얼음물 한잔을 가지고 거실로 나갔다. 해리는 다리를 꼬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얼음물을 내주고 나는 손바닥에 난 땀을 바지춤에 닦았다.

 

 

피터? 앉을래? 목이 좀 아픈데.”

. 그래. .”

 

 

나는 꼭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벅지로 올라온다. 나는 슬그머니 그 손을 떼어냈다. 최근에 해리는, 만날 때마다 은근슬쩍 몸을 더듬어온다. 그래. 그와 만나면 위험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성기가 아플 정도로 자위를 해대는데, 이런 자극이 외부에서 들어온다면? 그것도 해리 오스본이 근원지라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해리는 엉덩이를 옮겨 내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으악. 엉덩이라는 단어를 생각한 것만으로도 불경스러운 기분이 든다.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해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목이 많이 말랐던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입가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잠시 말을 쉬고, “많이 걱정했어.”라고 잔뜩 깔린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의 손은 다시 한 번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나는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집 소파는 그리 넓지 않았다. 해리가 반대편 손에 들고 있는 컵 속의 얼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 어어. 전혀, 없었어. 연락 못해서 미안해. , 걱정시킨 것도.”

사실 어제도 찾아왔었는데, 네가 나가고 난 뒤더라고.”

 

 

사실 어제는 하루 종일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침대에 있었다. 공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건·사고가 없으니 스파이더맨 사진을 찍으러 나갈 수도 없었다. 오전에 시끄럽게 벨을 울렸던 건 해리였구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숙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친구가 이렇게 걱정을 해주는데 난 자위나 하고 앉아있고 말야.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해리의 손이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 나는 딴청을 피우며 다리를 꼬았다. 해리는 손을 거두고 얼음을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꼭꼭 씹어 먹는 것이었다. 와사삭. 와사삭. 좋은 치과를 다녀서 관리를 잘 받는 건가. 얼음을 씹는 소리가 경쾌할 정도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피터, 얼음을 씹어 먹는다는 건 성욕을 억눌러서 그런 거래.

 

 

해리, 그거 알아? 얼음을 씹어 먹는다는 건 성욕을 억눌러서 그런 거래.”

…….”

 

 

해리는 얼음을 하나 더 입안으로 넣었다. 보란 듯이 얼음을 씹는데, 차가운 것을 먹어서 그런지 입술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괜한 얘기를 한 것 같았다. 어색해서 생각나는 대로 말하다 보니……. 해리는 그의 얇은 입술을 한번 빨았다가 놓았다. 무슨 의미가 있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꼬았던 다리를 반대쪽으로 다시 꼬았다. 조금 덥나? 손 부채질을 하자 해리에게서 은은한 향수냄새가 풍겨왔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는데, 해리는 눈을 접고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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