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에그시 조각

from 2.5/킹스맨 2015. 2. 25. 04:18

해리에그시

 

 

이 정도면 운명의 장난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해리 하트가 질 나쁜 인간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후자도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 그가 키우는 화분은 늘 말라죽기 때문에. 분명……. 좋은 신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죽인 걸지도. 모르고 말이다.

 

 

해리. 저 왔어요.”

, 에그시. 마침 잘 왔어.”

 

 

나는 그에게 화분을 건넸다. 하하. 이런 건 굳이 가지고 오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는 이전에 내가 선물했던 화분들처럼, 창가에 화분을 놔두었다. 그리고 아마 그 화분 안의 산세베리아가 이 집안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식물일 것이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다. 나는 코끝을 만지며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공기 정화에 좋대요.”

꽃집은 잘 되니?”

. 덕분에요.”

 

 

해리는 주방에서 샴페인 한 병 가지고 나왔다. 네가 올 때 따려고 놔둔 거란다. 해리가 말했다. 나는 조금 산만하게 그의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어디에도, 내가 선물했던 화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그가 주는 술잔을 가만히 받아들었다. 시큼한 포도주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또 다시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아서, 그것을 참기위해 나는 인상을 찡그려야만 했다.

 

 

. 물어볼 게 있어요.”

 

 

해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안에 들어있는 사진을 매만졌다. 땀 때문에 손가락 끝에 사진이 자꾸만 척척하니 달라붙었다. 해리는 얼른 말해보라는 듯이, 입 꼬리에 힘을 주었다. 저희 아빠와는 무슨 사이인가요? 설마 아빠가 이혼한 게 당신 때문은 아니겠죠? 입 안에서 정리되지 못한 말들이 껄끄럽게 굴러다녔다. 해리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어깨를 팡 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하기 어려우면 다음에 해. 난 언제든지 괜찮으니까.”

…… 해리. 저는, 그러니까.”

에그시.”

 

 

해리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내 말을 뚝 잘라먹었다. 당신이 좀 좋은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해리 하트는 정말로 질 나쁜 인간이 아닌 걸까?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에게 가볍게 포옹한 뒤 별 소득 없이 그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번에도, 그 다음번에도 큰 수확이 없으리란 것을 예감했다. 나의 예감은 크게 틀린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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