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스파이디

내 어린 해리와 늙은 피터

뽕삼 2014. 5. 8. 01:06

내 어린 해리와 늙은 피터

 

 

마주친 눈에 눈물이 약간 고여 있어서 피터는 당황했다. 커다란 짐 가방을 침대 옆 아무데나 놔두고선 피터는 한동안 해리와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해리는 핏이 잘 사는 양복을 입고, 피터의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었다. 피터는 한참동안 부엌으로 가 차라도 내와야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손님 행세를 했다고


피터는 본인은 느끼지 못했지만, 상당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죽은줄 알았어.”

그래서 잠금 장치도 다 부수고 쳐들어온 거야? 감동이네, 정말.”

그치만 열쇠 같은 거 안 주잖아.”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해리.”

 


피터는 덤덤한 얼굴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도톰한 입술을 이로 꾹 깨물고는 제 발끝만 쳐다보았다. 딱 보아도 고가의 명품 구두에는,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았다. 피터는 오랜 여행 끝에 지저분해진 운동화를 내려다본다. 바꿀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어디 갔다 온 건데?”

비즈니스랄까. 출장이랄까…….”

 

 

피터는 말을 흐렸다. 해리의 지나치게 파란 눈이 집요하게 피터의 시선을 좇았다. 너 때문에 불편해서 도망쳐 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중간부터는 해리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도 까먹고 정말 잘 놀다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덕분에 하나 알아낸 것은, 해리 오스본은 집 주인도 열쇠도 없을 땐 문을 뜯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로?”

여기저기……?”

……뭣 때문에?”

 

 

출장이라고 방금 얘기했잖아!”라고 피터가 성을 낼 틈도 없이, 해리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피터는 말을 잃었다. 나 때문이야? 울음을 삼키며 해리가 중얼거렸다. 꽉 눌린 음성에, 섭섭함이 잔뜩 묻어났다. 피터는 꼭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돌아버리겠군. 아니, 방금 돌았구나, . 피터는 한 바퀴 더 돈 뒤에야 입을 뗐다.

 

 

아냐, 아냐, 해리! 너 때문이 아냐!”

정말이야?”

 

 

해리의 젖은 눈동자가 곧바로 피터를 마주 본다. 피터는 입술을 몇 번 깨물었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리 와서 안아줘.”

 

 

피터는 한숨을 삼키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해리를 품 안 가득 안아주었다. 해리에게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청량하면서도 독하지 않은. 해리답다고 생각한다. 피터는 피곤에 절은 몸이 축 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뺨을 해리의 머리에 살짝 갖다 대었다. 해리는 젖은 얼굴을 피터의 어깨에 문대었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고, 간간이 해리가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피터가 그래도 아직 애구나.’ 싶어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든 순간이었다.

 

 

내가 미행만은 붙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

 

 

한번만 더 말없이 사라지면 그땐 나도 책임 못 져.

 

 

그렇게 알아. 해리가 피터의 가슴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선 얼굴을 들었는데, 눈가를 발갛게 물들이고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피터는 차마 그 얼굴에다 대고 화를 낼 수도, 마주 웃어줄 수도 없었다. 다만 진지하게 이사나 이민을 고려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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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