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해리와 늙은 피터
손풀기용
해리 오스본은 막무가내다. 어리기 때문이다. 돈 많은 집안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에게 인생의 시련이란 아침에 ‘어떤 넥타이를 맬까’하는 것 정도 아닐까? 피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평생 거절이란 것을 모르고 자랐겠지. 지레짐작한다. 피터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유를 마셨다. 주인도 없는 집에 쳐들어온 16살의 어린 유명 인사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아직까지 피터는 배워본 적이 없었다.
“이봐, 도련님. 다 좋은데 옷은 좀 입지?”
해리는 장난기 섞인 눈으로 제 어깨에 걸친 흰 이불을 양 옆으로 들춘다. 눈썹을 으쓱하며, “찍어주면 입는다니까.”한다. 푸—웁. 피터는 마시던 우유를 뿜고 말았다.
“저기, 나 아동성범죄로 잡혀가고 싶지 않거든?”
해리는 웃는다. 파란색 눈을 접고서 즐거운 듯이.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물론. 그게 아동 포르노라면 말할 것도 없지.”
해리는 낮은 목소리로 끅끅 웃는다. 하긴 저 나이엔 돌 굴러가는 것도 웃기지. 피터는 화가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해리는 침대를 데굴데굴 굴러가며 웃지만, 싱글 침대라 구를 공간도 없었다. 그리고선 낮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문득 ‘아동이라.’하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피터는 턱과 입가에 묻은 우유를 대충 닦아내고 카메라와 외투를 챙겼다.
“발가벗은 채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얼른 옷 좀 입어줄래? 나도 스케줄이란 게 있거든. 도련님덕분에 밥줄 끊기겠어.”
스파이더센스가 울리고 있었다. 이제 이런 것엔 꽤 무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장당 얼만데?”
“뭐?”
“두 배로 쳐줄 테니까 스파이더맨에게 데려다 줘. 사진 말고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줄 수 있잖아?”
전라의 해리가 어느새 피터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얼마 전 데일리 뷰글에 어이없는 광고를 낸 것은 해리 오스본인 것이 틀림없었다. ‘날 구해줘, 스파이디. xxx-xxxx-xxxx.’ 안타깝게도 스파이더맨이 구해야하는 뉴욕시민이 원체 많았던지라. 피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번호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오랫동안 히어로 생활을 이어오면서 늘어난 것은 조심성과 의심뿐이었다.
방문을 차고 들어온 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어린 아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스파이더센스가 울리고 있었다. 이젠 정말 가봐야 한다. 피터는 머리를 헝클였다. 해리는 피터와 눈을 맞추며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스파이더맨 사진을 너무 많이 팔아넘긴 것이 문제였을까. 피터는 해리가 벗어던져 놓은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워들었다. 그리고선 ‘어른의 단호함을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흰 나체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피터는 굳은 얼굴로 해리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해리는 고분고분했다.
“난 네 나체 사진을 찍고 싶지 않고, 찍지 않을 거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영원히.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스파이더맨에게 널 데려다줄 수 없어. 모르는 사이니까, 꼬마야.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피터 파커.”
“……그래. 집 주소도 아는데 이름이라고 모르겠니.”
“당신 가면을 쓰고 다니는 주제에 보안엔 영 신경을 쓰지 않더군.”
“…뭐?”
“설마 내 평생의 히어로가 이런 초라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찌릿찌릿한 감각이 골수를 타고 등허리를 지나간다. 들켰다. 그리고 위험해. 해리는 스스로 옷을 챙겨 입었다. 피터에게 눈을 맞추며 보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