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엔랍택

뽕삼 2013. 11. 21. 21:05

엔랍 택랍

 

 

네가 없으면

 

 

1.

 

처음엔 조용해서 좋았다. 집에 있는 그 자식은 눈만 마주치면 종알종알거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끄러운 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낀 다음에는 꼭 자기 시간이 있어야 했다. 레오의 바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조용하고, 그래서 편안한. 다른 바텐더와 다르게, 레오는 굳이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애달파하며 쫓아다니는 게이들은 꽤 되었지만, 레오는 놀랍도록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하는, 칵테일이 훌륭한, 공공재. 레오에 대한 정의는 그것만으로도 훌륭했다. 나는 그가 곱고 길고 흰 손으로 안주를 만들거나, 컵을 닦거나, 술을 섞는 것을 멍하니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딘가 우아한 그 손짓을 보고 있으면,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가 사르륵 녹아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부르르르르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애써 무시해봤지만, 소리는 점점 더 거세질 뿐이었다. 레오가 마른 수건으로 컵을 닦으며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릴까 하다가, 후환이 두려워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마이허니♡학연이었다.

 

 

으응. , ?”

[자기야, 왜 안 와?]

아니, 어…. 오늘 뒤풀이가 있어서.”

[나랑 하는 뒤풀이는 잊었어?]

 

 

나는 애써 학연의 말을 흘렸다. 금방 들어가겠다며 얼버무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드니 레오가 입을 꼭 다물고선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입 꼬리를 올려서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레오는 내 뺨인지, 눈인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왔다. 희뿌연 색깔의 음료가 예쁜 잔에 담겨 나왔다. 레오는 고갯짓으로 얼른 먹으라는 듯이 나를 재촉했다.

 

 

뭐예요?”

“-오르가즘.”

?”

 

 

레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먹어. 야옹아, 혹은 강아지야. 같은 눈빛으로.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가 처음 보여준 호의였으므로 조심스레 술을 마셨다. 달다. 맛있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숨에 잔을 비우자, 레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조심스레 살펴본 얼굴엔 미소가 만면하다. 귀엽다……. 학연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줍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나 이 아저씨한테 뽈인럽한 거 같아. 레오는 고개를 들었다가, 내 표정을 보고선 다시 또 정수리를 보여준다. 어머어머, 이 형 좀봐.

 

 

2.

 

얼큰하게 취해서 뜨거운 몸에, 얇은 몸이 착 안겨왔다. 어어디서 이렇게 마시고 왔어어. 애교가 잔뜩 섞인 말투. 나는 저절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으려고 했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학연에게 기댔다. 앞머리에 조심스레 그의 손이 닿아온다. 살살 이마를 간질이는 통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하고 웃어버렸다. 자기야, 씻고 자야지. 엉덩이를 살살 두들겨오는 통에, 나는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온 몸에 힘이 없어서, 그의 품에 더더욱 기댄 꼴이 되었다. 학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귓가에 감겨왔다. 자기야, 씻고 자자. 혀어어엉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길게 늘어진다. 혀엉인지 허엉인지. 구분할 순 없지만 학연은 내 뭉툭한 발음에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예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씻고 왔어어. ? 학연의 음성에 다정함이 아닌 다른 감정이 섞인다. 나 씻었다니까앙. 얼른 자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짜증을 내었다. 순식간에 머리채가 잡혔다.

 

 

자기야. 씻고 왔다 그랬어?”

 

 

머리가 아예 뽑혀나갈 것 같은 감각에 술이 깼다. 차학연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학연은 머리채를 잡고선 내 머리를 아래로 아래로 꾹꾹 눌러댔다.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야. 지금 시간이 몇 시지? 나는 최선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 바에서 나섰던 게 두 시, 아니면 세 시…. 잘 모르겠다. 그가 콧방귀를 뀌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여덟 시거든?”

 

 

아침까지 정신 못 차리고 처먹고. 샤워까지 하고 왔니? 학연의 매서운 눈길이 정수리에 닿았다. 정수리. 정수리하면 정수리 요정인데. 레오. 정택운. 레오의 미소 짓는 얼굴이 계속 어른거렸다. 머리 속에 온갖 상념이 떠다녔다. . 두피가 벗겨질 거 같다. 나는 결국 학연의 얇은 허리를 꼭 껴안았다. 형아. 혀엉아.

 

 

, , 자야, 자야 돼.”

 

 

주말에 공연 있는데…. 나는 차학연에게 떨어지면 죽기라도 하는 듯이 그를 꼭 붙들고 중얼거렸다. 차학연은 웃었다. 그래, 이년아. 자러 가자. 나는 머리 끄댕이를 잡힌 자세 그대로 침실로 질질 끌려갔다.

 


3.

 

집중.”

 

 

학연의 서늘한 목소리가 목덜미에 떨어진다. 철썩, 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화끈하다. 나는 졸린 눈에 힘을 주며 허리를 비틀었다. 순간 학연이 치고 들어온다. 나는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 침대 헤드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아아, 아씨이. 이마를 침대에 문대보지만 아픔은 사라지긴커녕 점점 더 짙어질 뿐이다. 학연의 땀에 젖은 손바닥이 이번엔 허리를 때린다. 철썩, 철썩! 학연의 손은 겉보기와 달리 제법 매운 편이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김원식, 집중 안 하지.”

 

 

이럴 때 보면 꼭 선생님이라니까. 존나 싫어. 잠투정으로 인해 끙끙 앓는 소리가, 흐느끼는 소리가, 목 안에서 울린다. 나는 무릎을 세우면서 형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칭얼거렸다. 주말에 공연 있다니까. 주말이 이틀 뒤라니까. 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학연은 내 골반을 잡고선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정말로 철썩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나는 입술을 깨물고 통증을 이겨내는 수밖에 없었다. 학연의 손이 순식간에 뒷목을 잡아챘다. 그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선 엄하게 말했다.

 

 

김원식, 딴 생각 하지마.”

 

 

아니 무슨 춤 선생이야? 나는 눈물이 찔끔 날뻔했다. 공연을 준비할 때 안무선생보다 더하다, 이건. 등이 당겨왔다. 차학연은, 평소와 다르게 애무도 전혀 해주지 않는다. 벌을 줄 때는 항상 개처럼 뒤에서 박아대는 게 그의 스타일이었다. 더 이상 아프고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 이럴 때의 차학연은 사정도 빨리 하지 않는다. 으윽, , 혀엉, 혀어엉. 나는 꼭 애원하듯이 그를 불렀다. 중간중간 콧소리가 섞인 게, 내 목소리지만 정말 듣기 고역스럽다. 그러나 그의 변태 같은 취향엔 꼭 들어맞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부러 코를 훌쩍거리며 차학연을 불렀다. 혀엉, 학연이형.

 

등 뒤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미친년, 끼 떠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다음 순간 몸이 180도로 휙 뒤집어졌다. 천장이 노랗다. 학연이 형 얼굴을 까맣고. 눈알은 하얀색으로 형형하게 빛난다. 잘못 건드렸구나. 나는 자꾸만 감기는 눈에 다시 힘을 주었다. 차학연은 나를 위해 친히 뺨을 때려주었다. 처어얼썩! 엉덩이를 때린 강도의 세배쯤 되는 것 같다. 입 안이 터졌는지 비릿한 피 맛이 난다.

 

 

자면 죽는다 너.”

 

 

그리고 한대 더 얻어맞았다. 그것도 꼭 같은 쪽으로 말이다. 나는 다 터진 입을 하고선 차학연을 보고 중얼거렸다. 허엉, 나 주마레, 공여언. 있는데에에. 말미에는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만다. 이번엔 진짜 안 울려고 했는데. 학연이형은 그제야 제법 다정한 얼굴로 가장하며 터져서 빨갛게 변했을 입술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가를 매만져주었다. 그리고선 고개를 숙여서 목덜미를 씹고 입술로 쭙, 빨아들인다. 어디 한 번 창피 좀 당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넌 내거라는 표식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아주 감격스러워서 또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4.

 

지킬 앤 하이드 다 나야 나 도망 치지마~

 

아침…이 아닌 이미 저녁이 다 된 때 눈을 뜨니 학연이 형이 침대 옆자리에 앉아 울고 있었다. 나는 지나가면서 가끔 들었던 유행가 가사를 곱씹었다. 진짜 이럴 때보면 미친놈 같아. 학연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얼굴이 차가웠다. 형이 아마 뭔가 붙여놓은 모양이었다. 진짜 병 주고 약 주네 미친놈이. 얼굴과 입 안은 쓰라리고, 허리는 쪼개질 거 같고, 속은 뒤집어질 거 같았다. 달다고 너무 많이 마신 탓이다. 그래, 내 탓이지. 다 내 탓이야. 골이 깨질 거 같아서 이마를 가만히 짚고 있으니, 어느새 형이 내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부엌에서 쪼르르 꿀물을 타오는 것이었다.

 

 

…머리 많이 아파? 술 깨는 약 사올까?”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몸도 보송보송하고 옷도 갈아 입혀져 있었다. 내가 자는 사이 혼자서 이리저리 뒤처리를 했을 게 분명하다. 나는 학연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꿀물을 다 마시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몇 시지 지금. 주말에 하는 공연은 춤까지 춰야 했기 때문에 단체 연습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훌쩍 지났을 것 같고, 또 몸 상태도 말이 아니라서 핸드폰을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학연은 가만히 내 눈치를 살피더니 떠듬떠듬 말을 했다.

 

 

내가, , 저기… 아프다고. 몸살 걸렸다고. 연락해놨어.”

 

 

꼭 혼나는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고선, 학연이 눈을 깜빡거렸다. 이럴 때는 진짜. 정말정말 예쁜데. 이래서 내가 얼빠 소릴 듣는 건가? 하긴 예쁜 건 좋다. 무조건 좋다. 학연이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헤어지기 힘든 이유는, 아마 팔 할이 그의 예쁜 얼굴과 애교에 있을 것이다. 학연은 내 얼굴을 가만가만 살피더니 허리를 쓱 안아서 나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니까 더 자도 돼. 자아, 식아. 그래, 그럼 더 자볼까. 하고 눈을 감았다. 옆에서 학연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야아, 나… 너 없으면 못 사는 거 알지?”

 

 

알지, 알지. 우리 형 집도 절도 없는데 나 없으면 못 살지. 그럼 그럼.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 피우고 그런 건 좀… 짜증나긴 하는데. 내가 용서 해줄게.”

 

 

하여간 씨발 개 코야. 나는 맞은 뺨이 또 욱씬욱씬 쑤시는 것 같아서 고개를 모로 돌렸다. 진짜 졸라 짜증나는데 반박할 말이 없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학연의 따끈한 손이 이마에 닿아온다. 이마도 아프다. 아마 혹이 났거나 빨갛게 부었거나. 멍이 들었거나 했을 것이다. 학연은 거기에 대고 촉촉한 입술로 뽀뽀를 짧게 했다. 아프지 말구. 얼른 자. 아…… 진짜. 아프게 한 게 누군데.



*

조각조각 이어보실게요~